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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맹이 이야기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는 김치 찌개는 이유없이 맛있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감성적인 요소가 그 이유일 거라고만 생각하며 자라왔지요.
그러다 언젠가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나 이모네 식구들이 어머니의 찌개를 맛있다고 해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우리 어머니 김치 찌개는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해주는구나.'
이런 느낌은 막연하게 느끼는 어머니 손맛에 대한 자부심과는 별개의 기쁨이지요.
이런 날의 느낌을 바탕으로 일류 요리사가 우리 어머니의 김치 찌개를 칭찬해준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우리 어머니 요리는 맛에서 이런 점이, 영양에선 저런 점이 좋은 훌륭한 요리라고 조목조목 말해준다면 그 때의 기분은 분명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요리 용어가 사용된 평이 조금 어렵더라도 귀 기울여 들어보고, 그 평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굉장히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외우려고 하겠지요.
제가 이 책을 읽고 그러했듯이 말이지요.
책을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대상 독자가 언어학을 조금 알거나 관심이 있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자와 가나がな를 잘 모른다면 행간에 녹아있는 의미들을 모두 읽어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착실한 번역자들이 그 의미들을 읽어주려고 부단한 애를 쓰지만 저자에게서 직접 전달 받는 것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지식을 보이는 저자가 한글의 탄생 비화와 변천 과정을 민족주의적인 호소나 과한 자부심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지적인 관점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글이 조금 어렵더라도 집중해서 읽어보고, 그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굉장히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깊게 읽게 됩니다.
한글이 감동적인 이유는 음을 형태로 가져오려했던 믿기 힘든 창의력과 치열한 노력 때문입니다. 훈민정음 해례가 담고 있는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 떴다'라는 구절은, 음 자체를 문자로 상형화하여 쉬운 글을 만들어 내려는 지적 노력이며 그 창의적인 과정 자체가 무척 감탄스러운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창의성만큼이나, 한글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치열하게 만든 이유가 우리 민족 전체가 쉽게 지식과 지혜를 갖출 수 있기를 원했던 조상들의 선구적인 혜안과 노력에 대한 고마움과, 그 글을 가꾸고 지켜낸 조상들에 대한 은혜가 한글 안에 깊숙히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맞춤법과 띄워쓰기가 어렵다고 불평할 것만 아니라 그런 고마움을 생각해서 더욱 바르고 예쁘게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책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껍데기 이야기
한글을 메타포로 정말 예쁘고 참신하게 표지가 나와, 표지를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전 언제나 깔끔한 표지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디자인되었다면 조금 빼곡해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떼어서 보아도 이렇게 예쁜 기호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는데, 한글은 기호로선 예쁘진 않은 편이라고 생각을 왜 했었던 걸까요.
독창적이고 친숙한 디자인에 더 해 하얀색인데도 때가 잘 안타는 재질도 아주 마음에 드는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