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알맹이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다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큰 인연은 대게 대수롭지 않은 순간에 대수롭지 않은 의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의1)에서도, 백야행2)에서도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연의 맺음들은 정말 사소한 발단이었지요. 이건 추리와 스릴이 빠진 이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게 시작한 인연이 나중엔 사람들의 순간을 바꾸고 삶을 크게 바꾸지요.
그러고 보면 저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한, 혹은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한 사람들도 참 대수롭지 않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제가 크게 생각하지 않은 순간에서 누군가에게 큰 의미였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타인과 함께하는 작은 순간도 충실하고 솔직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번 책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따뜻하고 유머 넘칩니다. 그리고 옴니버스 식의 이야기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구심점을 가진 옴니버스인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야기 방식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알고보니 그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 큰 영향을 주고받던 것이지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고 정겹게 전해주고, 그런 사람들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도 어딘가에 다들 공통점이 있었다라고 이야기 해주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점점 사람 냄새 맡기 어려운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딘가에는 나와 아주 작은 공통점이라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013년을 이 책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3)을 읽었을 때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다시 느꼈어요.

껍데기 이야기
책의 띠지를 살펴보면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라는 카피 문구를 사용했는데, 이런 문구를 생각하고 승인해준 사람들은 시말서를 쓰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의 기적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그냥 넘어가지 못한 따뜻한 마음과 관심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들이고, 그런 관심은 사실 어렵지 않다라는 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거죠. 추리의 대상은 아니었어요. 물론 작가의 전작들이 추리물들이었다는 점에 광고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조금 많이 빗나간듯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빼면 정말 예쁜 책입니다. 표지 그림이 이렇게 예쁜 책은 오랜만이에요. 저의 취향은 단순하고 깨끗한 편이라 그림이 들어간 표지는 사실 좋게 평가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표지 그림은 정말 예쁩니다. 그리고 양장본은 그냥 양장 아닌 표지로 만들고 조금 싸게 내면 안되냐고 누차 말해왔지만 간만에 양장이라서 더 만족스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표지가 참 예쁘게 나왔습니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책 표지도 사람 마음에 꼭 드는 책이었습니다.

주렁주렁 굴비
1)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출판, 2008
2)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태동출판사 출판, 2000
3)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이덴슬리벨 출판, 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맹이 이야기
강물 소리 같은 소설입니다. 강물이 아니라 강물 소리 말이지요.
문장 하나 하나의 길이와 그걸 읽어내는 호흡이 조금은 긴 편입니다.
앞의 문장과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 문장은 한 단락, 한 문단이 끝나기 전까지 그치지 않아 계속 읽어 내려가야 합니다.
그야 말로 강물처럼 졸졸 그치지 않고 문장이 흘러가지요.
하지만 문장에 흠뻑 젖지는 않습니다. 몰입이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정서적인 거리감을 작가가 일부러 유지 시키는 느낌입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라고 여겨져서 그럴까요.
덕분에 담담하게 읽어갈 수 있었고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서 계속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시대 배경으로만 짐작해보아도 여울물 소리에 담긴 이야기는 정서적인 소모가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선 말 대원군의 시대였으며, 동학 운동의 시대였고, 일본의 제국주의가 막 밀려 들어올 때의 시절이었으며, 걔 중의 주인공 화자들은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서민층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한 걸음에 읽기 어려운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을 빌면 동학 운동을 천지도 운동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정도로 직접적인 묘사는 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회도, 심지어 인물까지 뒤로 두면서 그가 앞에 두고 싶었던 건 이야기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낙이 시집가는 이야기와 짧은 인연의 만남과 같은  옛 사람들의 생활이야기와 고전 민요, 옛날 민담들과 그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모습들, 조선 말의 모습과 그때를 살던 민중의 모습, 동학이 생기고 전파되며 이어지는 모습까지 작은 이야기에서 커다란 이야기까지 이야기 자체가 독자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도록 작가가 아주 공들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석영씨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바리데기1)나 개밥바라기별2)에선 너무 직설적인 감정 전달이 조금 읽기 힘든 적도 있었는데 여울물 소리는 아주 담백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껍데기 이야기
분홍색 표지가 참 예쁩니다. 하지만 과연 책과 잘 어울리는 표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울물 소리라고 하면 쪽빛 파란색이나 옅은 남색이 생각나는 데, 그렇다고 책의 내용에서 분홍색이 상직적이거나 공감각적으로 어울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오히려 책 껍질을 벗겨낸 노란색 양장 표지가 책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일부러 껍질을 씌워서 아쉽네요.
이야기만 남기려고 무단히 노력하고 집중한 책이고 이야기 사이의 여백이 진짜 아름다운 책인데 책 표지는 그를 잘 못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쉬움이 듭니다.

주렁주렁 굴비
1)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작과 비평사 출판, 2007
2)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문학동네 출판,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사건과 추리가 빠지고 사람과 감동이 들어갔습니다. 2013년 첫 책으로 삼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책으로 다가갈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맹이 이야기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는 김치 찌개는 이유없이 맛있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감성적인 요소가 그 이유일 거라고만 생각하며 자라왔지요.

그러다 언젠가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나 이모네 식구들이 어머니의 찌개를 맛있다고 해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우리 어머니 김치 찌개는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해주는구나.'

이런 느낌은 막연하게 느끼는 어머니 손맛에 대한 자부심과는 별개의 기쁨이지요.

이런 날의 느낌을 바탕으로 일류 요리사가 우리 어머니의 김치 찌개를 칭찬해준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우리 어머니 요리는 맛에서 이런 점이, 영양에선 저런 점이 좋은 훌륭한 요리라고 조목조목 말해준다면 그 때의 기분은 분명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요리 용어가 사용된 평이 조금 어렵더라도 귀 기울여 들어보고, 그 평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굉장히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외우려고 하겠지요.

제가 이 책을 읽고 그러했듯이 말이지요.

책을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대상 독자가 언어학을 조금 알거나 관심이 있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자와 가나がな를 잘 모른다면 행간에 녹아있는 의미들을 모두 읽어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착실한 번역자들이 그 의미들을 읽어주려고 부단한 애를 쓰지만 저자에게서 직접 전달 받는 것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지식을 보이는 저자가 한글의 탄생 비화와 변천 과정을 민족주의적인 호소나 과한 자부심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지적인 관점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글이 조금 어렵더라도 집중해서 읽어보고, 그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굉장히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깊게 읽게 됩니다.


한글이 감동적인 이유는 음을 형태로 가져오려했던 믿기 힘든 창의력과 치열한 노력 때문입니다. 훈민정음 해례가 담고 있는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 떴다'라는 구절은, 음 자체를 문자로 상형화하여 쉬운 글을 만들어 내려는 지적 노력이며 그 창의적인 과정 자체가 무척 감탄스러운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창의성만큼이나, 한글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치열하게 만든 이유가 우리 민족 전체가 쉽게 지식과 지혜를 갖출 수 있기를 원했던 조상들의 선구적인 혜안과 노력에 대한 고마움과, 그 글을 가꾸고 지켜낸 조상들에 대한 은혜가 한글 안에 깊숙히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맞춤법과 띄워쓰기가 어렵다고 불평할 것만 아니라 그런 고마움을 생각해서 더욱 바르고 예쁘게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책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껍데기 이야기

한글을 메타포로 정말 예쁘고 참신하게 표지가 나와, 표지를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전 언제나 깔끔한 표지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디자인되었다면 조금 빼곡해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떼어서 보아도 이렇게 예쁜 기호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는데, 한글은 기호로선 예쁘진 않은 편이라고 생각을 왜 했었던 걸까요.

독창적이고 친숙한 디자인에 더 해 하얀색인데도 때가 잘 안타는 재질도 아주 마음에 드는 표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맹이 이야기

엉뚱한 생각은 그냥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때로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스케일 큰 상상보다는 일상을 비추는 작은 상상이나 자신의 추억과 얽힌 공상이 더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버스 좌석에 붙어 있는 점술가에 대한 광고를 보고 실제로 전화를 걸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해한다든지, 어제 밤 꿈을 5분전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다시 이야기 해 주려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든지. 평소랑은 조금 다른 시선과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집集은 그런 맥락에 닿아 있습니다. 일상을 비추는 엉뚱하거나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일상을 비추기 때문에 많이 공감할 수 있고, 조금만 삐딱한 시선 덕분에 부담이 없으며, 엉뚱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1Q841)를 그렇게 재미있게 읽진 않았기 때문에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인식은 제법 괜찮은 이야기를 다소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이렇게 재치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과연 책의 제목을 꼭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으로 정했야 했는지입니다. 

저는 에세이집을 읽게 되면 책 제목에 쓰인 꼭지는 어디 쯤에 있는지 꼭 찾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먼저 그 꼭지부터 먼저 읽어 보게 됩니다. 물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2)과 같이 제목과 에세이가 나란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꼭지의 제목을 가져와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목으로 나온 에세이부터 먼저 읽게 되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으로 쓰인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꼭지는 아니에요. 이 책엔 깊이있는 고찰까진 아니더라도 꽤 재치있는 생각들을 생각들을 담은 글도 많이 있는데,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재미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인 꼭지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굳이 이 책의 제목으로까지 삼은 걸 보면 글은 읽지 않고 가장 어감이 좋은 문장만 단순히 찾은 건 아닌가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책의 제목으로 찾을 만한 에세이 제목이 마땅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렇다면 ‘하루키 대표 에세이집’이라는 제목을 삼아서 커다랗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런 제목은 너무 쿨하지 않았던 걸까요.


껍데기 이야기

검색을 해보니 문학동네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집3)은 표지가 통일되어 참 예쁩니다. 사고 싶게 만들어 놓았어요.

다만 아쉬운 점이은 검은색에 보라색 폰트를 쓴 제목 글자인데 제목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책의 제목으로 뽑힌 꼭지의 내용처럼 먼저 접한 얼굴인 제목 폰트의 색깔이 이 책의 다른 좋은 에세이들을 숨기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주렁주렁 굴비

  1.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출판, 2009
  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출판, 1998
  3.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벨런타인 데이의 무말냉이, 해뜨는 나라의 공장,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출판,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