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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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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책은 기만을 다룬다. 기만이라, 속인다 라는 개념을 저자는 Deceit라는 단어로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행위를 파고 들었다. 기만欺瞞은 남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하는 데―영어권에서는 이 단어를 같이 사용하는 듯 싶다. 이 또한 기만의 한 종류라 파악하게 됐고. 책은 그리 까다롭지 않은 진행을 하는 데, 마치 신문에 투고한 글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기만에 대하여 그간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라 해두는 게 좋을 듯 싶다. 조금 딱딱한 책을 읽다가 한 권의 책에 무척 다양한 사례를 담은 책을 오랫만에 읽게 되다보니, 읽는데 다소 혼동이 왔다.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의 경계가 모호해졌는데, 그런 점에서 기만을 주제로 잡은 이 서적은 읽는 독자에게 <자기기만>을 퍼트리고 있는 중이겠다.

먼저 목차를 보자.

1장 자기기만의 진화논리
2장 자연에서 기만
3장 신경생리학과 강요된 자기기만
4장 가정의 자기기만과 분열된 자아
5장 기만, 자기기만, 섹스
6장은 자기기만의 면역학
7장은 자기기만의 심리학
8장 일상생활에서 자기기만
9장 항공 우주 재난과 자기기만
10장 거짓 역사 서사
11장 자기기만과 전쟁
12장 종교와 자기기만
13장 자기기만과 사회과학의 구조
14장 우리 자신의 삶에서 자기기만과 싸우기


저자가 기만을 내세우는 이유는 1장과 마지막인 14장에 들어있다고 본다.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진화논리와 자기기만과 싸워야 하는 이유를 그래서 살펴보는 것이리라 본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점이 적지 않게 보인다. "우리는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들어오는 정보뿐 아니라 해동하려는 내면의 이도를 본다. 마치 사전에 예측해야 할 일을 사후에야 알아치리는 듯하다. p502"에 있는 내용이 기만에 소재로 적당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논리전개에 쓰인 설정은 기만이라는 개념에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듯이 보였다고 해두자. 책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경험과 성공,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추구로 넘어가려는 듯 보인다. 소로우의 명상 세계로 들어가려고 몸을 씻는 행위처럼, 스스로 기만에 물들었던 것을 바라보고 비워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인다. 남을 속이기 위해 우리는 있을 법하지 않은 온갖 방식으로 내부에서 정보를 재편하려는 유혹에 빠지며,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자기만의 주된 기능이 공격하는 것이라는―남을 속이는 능력이라고 볼 때―이 단손한 전제로부터 우리는 자지기만의 이론과 과학을 구축할 수 있다. p22" 로 돌아가서 기만의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저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속인다는 말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개연성이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이 정의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전개는 다소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기만은 진화를 설명할 때 저자만의 생각인 듯 싶기도 했다. 물론 소수의 생각이더라도 존중해야겠지만, 저자가 논증에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저자는 자기기만을 진화적으로 접근한다고 서두에 밝혔는데, 진화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한 듯 싶다.

필자는 기만을 생화학적으로 접근할 때, 호르몬의 역할로 보고 있다. 식물에서 보면 탄닌Tannin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떫은 맛을 내는 데, 동물의 껍질을 가죽으로 만들 때 쓰이는 방부제이면서, 식물에서는 방어기능을 하는 호르몬으로 작용한다. 기만은 진화에서 보자면 보호본능에 속할 수도 있고, 방어본능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기만은 진화의 입장을 고수한다지만, 사회적 관계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사회적 관점도 물론 진화에 속하지만, 흔히 진화라고 한다면 관찰이 그래도 가능한 영역이 아니던가. 대개의 전개는 동양의 직관直觀과는 너무 거리가 먼 서양식 합리주의에 근거를 하고 있다. 합리주의라고 해도 조금 부족하다고 본다. 물론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정의는 비교적 잘 묘사되었다. 기만을 보는 관점을 기만 그 자체를 알고 접근했다기 보다는 기만을 기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유해성이 과연 진화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전개는 자벌레 같은 것은 무시하고, 오징어와 문어에 대한 위장술에 더 집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조금 큰 동물이 영리하다고 기만을 더 잘 할까? 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허나 기만의 수준은 벌레나 큰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영리한 아이들이 더 잘 속인다는 것일 수 있다는 전제를 둔 저자는, 앎에 대한 접근이 상당히 급한 면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낯선 부분이며, 예술에 대한 전개에서도 그러하다.

프로이드가 꿈의 분석을 통해 이룬 것도 하나의 관찰에 대한 것이었지만, 세상을 바꾼 위대한 생각 중 하나였다. 위대하다는 것은 사랑과 자비가 들어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사랑과 자비보다는 개인적 경험과 그가 겪은 소소한 일들로 명철한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 할까, <5장 기만, 자기기만, 섹스>에서 프로이드가 다룬 성의 개념과는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프로이드가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저자의 기만은 섹스가 욕구에서 나왔다기 보아는 기만의 술책으로 본다는 점은 본능의 관점이 아니기에 진화에 가깝지 않은 전개라고 보게 되었다. 진화라는 것은 생각도 생각이지만 살아남기 위한 것과 살아남은 적자생존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기만이 과연 그 법칙에 얼마나 포함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은 저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성은 왜 있을까?> 라는 소목차에서 암수의 역할을 피력하지만, 동양에서는 암수는 음양이다. 성의 존재가 다양한 자손을 생산하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현재까지 밝혀진 보편적인 사실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성이 물론 단세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다세포로 오고, 다시 척추동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나타난 현상 중에 하나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단세포가 성이 없다고 세포가 증식되지 않는가? 단세포는 세포분열이라는 가장 완벽한 복제를 하는 데, 척추동물이라는 고등생물의 입장에서만 다룬 성은 자손번석이 편협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단세포로 이뤄진 우리의 몸은 감기같은 세균조차도 면역력이 떨어지면 방어하지 못하는 편이다. 진화의 입장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는데, 기만은 진화를 조금 가볍게 보려고 한 것같다. <여성에 불륜에 대한 남성의 반응>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조금 웃었다. 책의 골라 꽤 괜챦은 책이라 싶어 천천히 읽어보려 했는데, 뷸륜이 나오다니! 놀랬다. 그리고 배란기에 대한 이야기는 국소적 현상이지 보편적이라 볼 수 없다. 그 또한 생명의 탄생을 기만의 영역에서 배란을 다룬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후에, 저자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후에 더 읽어보아야 할 듯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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