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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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는 등에 난 종기로 고생하는 정조를 그렸다. 두괄식과 미괄식이라는 논(論)의 긴 잣대를 대보면, 결정적 실수가 아닐까. 책 전반에 흐르는 기운을 포착하고자 세심히 읽었고, 현 시대의 CEO에게 이 책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종기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생기는 병인데, 긴장이 누적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책의 눈, 거기에는 사마천도 있고,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혀를 자른 후 말을 하지 않으려는 심정도 담겨있다. 종기로 불거진 독살설은 축소되어 책에 입혀졌다. 부족한 증거라서 그랬겠지만, 몇몇 사건은 정황을 뛰어넘어 사실로 보이게 한 흔적이 더러 보인다.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는 까닭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금을 받기 때문에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조작함이 있기 때문에 다스리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백성들이 쉽게 죽는 까닭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쉽게 죽게 된다. 무릇 살고자 인위적으로 조작함이 없는 사람은 그 삶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보다 현명하다."

<노자>의 '식손' 중에서


책은 정조가 논어를 주로 읽었다고 몇 번 밝혔는데, 정조의 정치사상은 논어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에서 보면 노자의 식손에 어울리는 듯 하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관계, 아비와 아들은 무엇을 주고 받았던가. 할아버지와 손자는 또한 무엇을 주고 받았는가? 왜 영조는 아들인 사조세자를 미워하게 되었는가를 책은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풍문을 적어놓았다.

분노의 에너지를 잘 다스린 임금이라 책은 줄곳 강조한다. 분노는 무엇일까. 그 사건을 속속들이 아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과 어느 쪽의 분노가 더 클까. 영조는 66살에 15살인 정순왕후에 재혼을 강행했다. 사도세자보다 10살이나 정순왕후는 어렸다. 혜경궁 홍씨는 또한 어떠한가. 한중록을 통해 비친 사도세자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그렸다. 비정상이라 할지라도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죽이지 않는 게 인지상정인데, 끝내 사도세자를 죽게 했다. 무엇 때문일까. 이 사건을 정조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느냐가 분노의 크기라 할 수 있다. 책은 이 사건을 복선(伏線)으로 처리하다가 급선회한 듯 하다. 그리고 정조의 감정을 곳곳에 <크게 울었다>라고 쓰고 분노를 말하고 있다.

본인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하려 했다고 정조를 생각해왔다. 재태크보다는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우선순위에 둔다고 해두자. CEO (chief executive officer)는  이사회를 주재하고, 기업의 그룹 방침을 결정하며, 장기계획을 책정하는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정책과 방향을 선택하고 추진하려면 적지 않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결정은 결국 CEO 자신이 내리기에, 책임 또한 무겁다. 현 시대의 CEO가 고민하는 것과 정조의 고민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구나, 라는 세심한 읽기는 고민을 풀어내는 글쓰기에 있다고 본다. 책의 고민은 한 수레지만, 무엇 때문인지 정조의 고민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흐름은 사람의 관계인데, 책에서는 택군(擇君)이 빠졌다. 조선 사대부의 왕권 견제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의 영향이 크리라 본다. 택군의 정치사이기에, 정조 역시 세자 때와 왕이 된 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치열한 암투는 인조반정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노론의 시파와 벽파 그리고 남인의 포용을 정조가 다루는 방법은 자세하지 않다.

책의 장점이라면, 추론의 기능이 강화라 할 수 있다. 몇 개의 사건을 두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다. <만약>을 줄이기 위한 편지정치를 했다고 하면 어떨까. 수려한 문장은 현재에도 충분히 공감을 준다. 정조는 맹자의 리(利)를 배척했다는 점을 자세히 써주었으면 했다.

제나라 선왕이 탕이 걸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를 정벌한 사실을 들어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되느냐?”고 묻자 “인(仁)을 해치는 사람을 적(賊)이라고 하고 의(義)를 해치는 사람을 잔(殘)이라고 하는데 잔적(殘賊)은 필부에 지나지 않는 바, 필부인 주를 주살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욕망과 도피의 관계를 리(利)에서 풀고자 한 이유는, 어디까지 거슬러 갈 것인가. 리(利)가 리(理)로 다스려질 수 있는지를 책은 말하고자 하였으나, 책의 혀는 조금 굳은 듯 했다.  
 
정조는 벌모(伐謨)로 집권 기간 동안 임했다고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이 정조의 리더쉽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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