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오후. 한적한 공원 벤치에는 양복을 잘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한 명 앉아 있다. 신사는 품에 아기를 안고 있고, 품에 안긴 아기는 시끄럽게 울고 있다. 벤치 한쪽에는 신사의 것으로 보이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표지에는 '모두 다 예쁜 말들'이라고 적혀 있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나타나자 신사가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한다.)

 

신   사: 안녕하신가, 젊은이!

젊은이: 안녕하세요.

신   사: 참 좋은 날씨지 않은가? 이런 날에는 '강 같은 평화'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곤 한다네. (신사는 시끄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한 번 쳐다본다.) 정말 축복 같은 날이야.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선생님 댁 아기인가요?

신   사: 아기가 우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자네는 그걸 분간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아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나는 이 아기를 무엇보다도 사랑하네.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에서 36가지의 다른 의미를 분간해 낼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그런 건 불가능하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아기가 배가 고픈 건 아닐까요?

신   사: 자네는 유독 어머니들만이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혹시...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할 것도 없지. 넘치는 모성애가 아니라면 유독 어머니에게서만 젖이 나오겠는가. 아버지들은 어머니들의 사랑을 본받아야 해.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기저귀를 갈 때가 된 건 아닐까요?

신   사: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천 기저귀 뿐이었지. 하지만 천 기저귀에는 1회용 기저귀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따스함과 정성이 가득했지. 자네는 그 이유가 뭔지 짐작하겠는가?

젊은이: 글세요... 그건 아마도...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매번 기저귀를 빨아서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건 보통 사랑가지곤 안 되는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불편한 듯한 얼굴로)저, 그런데 저는 이만 볼일이 있어서...

신   사: 오, 그렇게 하게. 정말 사랑이 넘치는 대화였다네, 젊은이!

젊은이: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럼...

 

(젊은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머뭇거리며 걸어간다.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다. 몇걸음을 뗀 젊은이가 이내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신사에게로 돌아온다.)

 

젊은이: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요?

신   사: 옛날에는 아이들이 다쳤을 때 어머니가 발라 준 된장만으로 거뜬히 낫곤 했다네. 어지간한 약 따위는 댈 것도 없지. 자네는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역시...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한낱 된장으로 사람의 몸을 치유한다는 건 거짓말 같은 일이지. 사랑이 아니라면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젊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제 정말로 가보겠습니다.

 

(젊은이는 아까보다 좀 더 단호한 걸음으로 총총히 퇴장한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린다. 신사는 찬송가에 맞추어 흥얼거리다가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라는 대목을 유독 크게 따라 부른다. 신사의 노랫소리에 놀란 듯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신사의 노랫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경쟁하듯 울려 퍼진다. 아기는 계속해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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