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칼링컵 3라운드에서 박주영이 드디어 70여분을 뛰며 아스날 데뷔전을 치렀다. 4부리그 팀을 상대한 걸 감안하면 조금 아쉬운 활약이었을 수도 있지만, 경기 후 뭔가 큰일이라도 났다는 듯이 부정적인 전망을 잔뜩 쏟아내는 기사들을 보노라니 조금 우습기도 하다. 몇몇 기사들의 제목에 따르면, 주전경쟁은커녕 "조커도 위험"해지고 박주영과 교체해서 20여분을 뛴 일본의 신성 미야이치 료와 "희비가 엇갈리고" 기껏해야 "헛심"이나 쓰고 한마디로 "설설기었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런 기사들만 보면 이것으로 박주영의 올시즌은 이미 끝난 모양새인 듯하다. 게다가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어느 기사에서는 "박주영 아스널 데뷔전으로 본 여섯 가지 과제들"(http://sports.media.daum.net/worldsoccer/news/breaking/view.html?cateid=100032&newsid=20110922064404789&p=sportalkr)을 친절하게 짚어주기까지 하는데, 내가 보기에 문제는 박주영의 플레이가 아니라 바로 이런 기사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일단 박주영은 "지나치게 긴장했"단다. 그래서 "발바닥으로 긁으려다 볼이 걸리지 않아 역습타이밍을 놓쳤"다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일단 박주영이 지나치게 긴장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두세 번의 볼 컨트롤 실수가 곧 긴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경기에서 뛰는 모든 선수는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말과 같다. 경기 중 누구나 볼 컨트롤 실수는 몇 번씩 하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그런 실수로 박주영이 역습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다. 실제로 전반전에 있었던 아스널의 가장 좋은 찬스는 박주영의 '사소한' 실수 이후에 만들어졌다. 박주영이 발바닥으로 긁으려다 공이 걸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템포를 죽인 후(어차피 대단한 역습 상황도 아니었다) 때맞춰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키어런 깁스에게 패스를 내주고 깁스가 지체 없이 샤마크에게 크로스를 올린 것. 비록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긴 했지만 '과장되게 해석'하자면 활동반경을 넓힌 박주영이 좋은 장면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기사에 따르면 박주영은 동료들과 동선이 겹쳤는데, 이는 "지난 3년간 자신을 중심으로 뛰어주는 환경에 익숙해진 탓"이란다. 즉, "AS모나코에서는 자기가 볼을 잡고 있으면 동료들이 움직여줬고,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면 여지없이 패스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건 실로 터무니없는 소리다. AS모나코의 문제는 동료들의 움직임이 부족하고 누군가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도 적절한 패스가 들어오지 않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AS모나코는 지난 시즌 강등을 당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동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주고 누군가 공간으로 들어갈 때 여지없이 패스가 들어오는 팀은 많지 않다. 게다가 박주영의 데뷔전 경기를 보면 특히 베냐윤과 겹치는 장면이 꽤 있었는데, 알다시피 베냐윤도 이적생이다. 아니, 실상 그날 경기를 뛴 많은 선수들이 아스널에 익숙한 선수들은 아니다. 당연히 선수들 모두 동료에 익숙해져서 팀워크를 이루는 게 자연스럽지, 기사에서 말하는 대로 오직 박주영만이 "동료의 동선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박주영이 경기 후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것을 두고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클럽 아스널 소속 선수라면 가끔 고집을 버릴 필요가 있다"며 "일반인들도 회사 다니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보아주기 힘들 지경이다. 일반인들이 회사를 다니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대개 회사에서 직접적으로든 혹은 암묵적으로든 시키는 일을 할 때다. 하지만 아스널이 박주영에게 인터뷰에 응하도록 종용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현장취재 했을 때 한 번도 취재진 인터뷰를 거부하지 않았던 선수로 티에리 앙리를 소개하며 노골적으로 박주영과 비교하는 데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앙리와의 인터뷰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면 '친절한 앙리씨'를 찾아 미국으로 날아가면 될 뿐 박주영에게 툴툴거릴 일은 아니다. 박주영의 말 한마디를 어떻게든 '기사화'하기 위해 영국에 날아간 기자로서는 '박주영의 취재요청 거절'이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본래 일반인들도 회사 다니다 보면 못마땅한 일을 그저 속으로 감내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당시 앙리는 아스널의 주장직을 맡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장이라면 책임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박주영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기피하는 자신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주장으로서 대표팀의 공식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클럽"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영국 BBC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에이전트 제이슨이 맨유로부터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오랫동안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던 것은 유명하다. 만약 박주영이 언론을 기피한다면 거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고, 위에 소개한 기사가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기사에 투사하여 입맛대로 해석하는 기사들,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찌라시'라 부르"고, 이런 기사를 좋아할 만한 선수는 드문 법이다.

박주영의 데뷔전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또 그 경기를 통해 그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요컨대 누구도 박주영의 아스널 데뷔전이 그의 미래에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언론에서 말하는 것만큼 박주영의 현실과 미래가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 완벽한 예시는 박지성이다. 만약 언론에서 했던 우려와 비판과 부정적 전망의 단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사실에 부합했다면, 아마도 박지성은 이미 맨유에서 수십 번쯤 짐을 싸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박지성은 이제 맨유에서 7시즌 째를 맞고 있다. 물론 박지성의 예가 박주영의 경우에도 정확히 들어맞으리란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박주영은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지금 박주영의 데뷔전 이후 쏟아지는 평가들을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돌잡이 때 아기가 돈을 집다 찢어버리자 그 아이가 나중에 전 재산을 모조리 날리게 될 거라고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는 것과 같다. 설령 아이가 돈을 찢었을지라도 그 아이에게 '과제'를 주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전망'을 하기에는 일러도 지나치게 이르다.

덧. 박주영의 '기도 세레모니'를 못마땅해 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의 세레모니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종교적인 문제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뭐랄까, 박주영의 기도 세레모니는 축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너무 일찍 잘라버려서, 고양된 흥분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개인의 골 세레모니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아주 조금만 더 뒤로 돌려서 안티팬의 상당수가 돌아설 수 있다면, 박주영으로서도 꽤나 괜찮은 일이 아닐까. 내가 하나님을 잘은 몰라도 그분은 당신의 이름을 조금 더 늦게 부른다고 화를 내실만한 분은 아닌 반면, 나를 포함한 축구팬은 좀 더 성급하고 좀 더 화를 잘 내는 편에 속하니까 말이다. 뭐, 물론 내가 몰라서 그렇지, 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조금만 늦게 불러도 화를 내는 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솔직히 그런 분에게 왜 '기도' 씩이나 해야 하는지는 나로서는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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