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은 살아가면서 결코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 중 하나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꼽았지만 내 경우에는 완전히 그와 반대다. 나라면 살아가면서 결코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 중 하나로 "고향을 떠나는 것"을 들 테고, 물론 이때 말하는 '고향'이란 빌 브라이슨이 의미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국'을 뜻한다. 어쩌다보니 나는 '대한민국'이라고 자칭하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그게 싫든 좋든, 나로서는 도저히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덧붙이자면, 내가 살아가면서 결코 할 수 없는 나머지 두 가지는, 책장에 안 읽은 책이 없게 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을 단 세 가지로만 꼽는 것이다ㅡ슬프게도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서 살아가는(혹은 살았었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렇기에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게 된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는 않다. 아니, 그렇기는커녕 외려 '고향'을 떠나는 일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는 만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삶은 어쩐지 조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데가 있고, 이번에 읽은 세 권의 책이 모두 고향을 떠난(혹은 떠났었던) 이들의 이야기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선택은 꽤나 괜찮았다.
먼저 집어든 책은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프라하에서 소녀시대를 보낸 요네하라 마리와 함께 우정을 나누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러한 과거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수십 년 후 요네하라 마리가 그때 그 소녀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리차, 아냐, 야스나와 관련된 일화를 풀어내는 요네하라 마리의 기억력과 묘사력은 탁월하며, 소녀들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과의 재회를 위해 홀연 동유럽으로 날아가는 요네하라 마리의 의지는 탄복할 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이른바 '소녀시대'로 대변되는 '과거'를 대하는 요네하라 마리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어를 배웠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결국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의 삶으로 이어졌다거나 혹은 남들은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이국에서의 특별한 우정이 있었기에 수십 년 만에 동유럽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하는 단선적 결론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배웠던 가치, 이국에서 나누었던 우정, 역사적인 교훈, 태어난 뿌리에 대한 자각 등, 행간 곳곳에는 '과거'로부터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요네하라 마리의 사고가 여실히 드러나고, 하기에 요네하라 마리가 보여주는 지금의 모습이 오히려 그의 '소녀시대'를 빛나게 만든다고 말해야 옳을 듯하다. 요컨대, '과거'란 단지 지나가 버린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지금 과거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채색될 수 있는 무엇이며, 이 책은 그점을 증명하는 빛나는 예시인 셈이다.
한편, 그에 비해 영국인인 저자가 프랑스의 프로방스로 옮겨와 산 열두 달의 경험을 풀어낸 <나의 프로방스>에는 무엇보다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두드러진다. 집을 사는 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문서, 휴가철이면 우르르 몰려드는 관광객들, 무지막지한 추위, 도무지 끝나지 않는 공사 등, 영국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이상해 보이고 심지어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프로방스에는 가득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안다. 그리고 동시에 멋진 날씨, 맛있는 식사, 여유로운 나날 등, 프로방스에서 주어지는 축복을 마음껏 즐긴다. 어느 곳에서 태어났든 혹은 어느 곳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다만 지금 살아가는 프로방스의 방식을 존중하고 기꺼이 여기며 프로방스에 동화되는 저자의 모습은 싱싱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또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의 요체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어느새 우리는 며칠이나 몇 주가 아니라 계절 단위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프로방스가 우리 때문에 본연의 속도를 바꾸지는 않을 테니까.(p352)
그런데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고향'에서의 삶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는 매우 훌륭하긴 해도 아주 재미있지는 않다. 내가 유독 베베 꼬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고향에서 맞닥뜨리는 '본연의 속도'란 건 이쪽에서 봤을 때 종종 납득하기 어렵고, 하여 그럴 때 초래되는 엇박자의 이유를 그 '제멋대로의 속도' 탓으로 돌려버리는 건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 아닌가. 쉽게 말해서 새로운 고향에 대해 한바탕 불평을 쏟아내는 일은 꽤나 자연스럽고 특히 흥미로울 수 있다는 얘기고,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을 세상에서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빌 브라이슨이다. "당신은 그 칼럼에서 늘 불평만 늘어놓잖아요."라는 아내의 말에 빌 브라이슨은 이렇게 대꾸한다. "불평하는 게 내 일인걸."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의 선전 이후 빌 브라이슨의 책들을 이른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시리즈'로 통일해버리는 출판사의 작명센스는 그리 호감이 가는 건 아니고 그 중에서도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이라는 제목은 납득하기도 어렵지만(그런데 이런 제목이 꽤나 부러웠던지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을 출간했던 또 다른 출판사는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으로 바꿨다), 나는 내가 이런 제목 따위는 무시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일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은 일단 '미국학'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하게 되고, 혹 진심으로 '미국학' 따위를 읽을 마음이 있더라도 '발칙한'에서 턱 걸리게 될 것 같지만, 빌 브라이슨은 적어도 이 책에서 '빌 브라이슨'이라는 이름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일전에 어느 책에서 빌 브라이슨이 농담처럼 언급한 바 있던, "살아가면서 결코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 중 하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철회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흔히 '귀향'이라는 이미지가 품기 쉬운 애틋함과 그리움 그리고 익숙함이라는 감정 대신 불평과 불평 그리고 불평으로 채워 넣어 독자를 즐겁게 한다. 우편 서비스, 컴퓨터 모델 넘버, 영화, 크리스마스 장식, 철자법 검사 프로그램, 관료주의, 가게 계산대, 커피 판매대 등, 그가 불평을 쏟아낼 대상은 '고향' 어디에나 넘쳐나고, 물론 실은 꼭 '고향'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빌 브라이슨은 그저 어쨌거나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여전히 그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확실히 그는 자신의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빌 브라이슨의 대꾸에 "불평하는 게 당신이 하는 전부죠."라고 맞받아친 아내의 말처럼 이 책이 오직 불평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로서도 오직 불평만을 쏟아내며, 이런 불평쟁이의 책을 읽는 일 따위는 진즉 관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거지 같은 불평 뒤에 자리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탁월한 유머 감각 그리고 의외의 따뜻함이 진정 그의 불평을 돋보이게 만든다. 익숙하기보다는 종종 낯설고, 그립고 애틋하기보다는 때때로 당혹스러운, 하여 도처에 불평해야 할 것이 넘쳐나는 그의 '조국' 미국이 그래도 괜찮은 나라 같고 또한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 만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불평 뒤에 자리한 빌 브라이슨의 그와 같은 진면목이 충분히 독자의 마음으로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거나 빌 브라이슨이 '불평'을 '일'로 삼는 괴짜인 건 분명하고, 다시 찾은 '고향'에서 불평을 한껏 쏟아내는 게 그리 훌륭한 태도라고 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식 축사의 연설마저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더군다나 의외로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을 담을 줄 아는 빌 브라이슨의 불평 가득한 글이 대단히 매력적인 것도 분명할 것이며, 모르긴 몰라도 이런 불평쟁이라면 그의 고향도 그의 불평을 즐거이 반겨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과히 틀리지는 않으리라. 그러니 아무쪼록 "만약 당신이 빌 브라이슨만큼 언어 구사에 능하고, 위트 있고, 역사와 통계에 관심이 많고, 웃음이 터져 나올 시점을 정확히 아는 작가를 알고 계시다면 내게도 알려주시기 바란다."라는, 책 뒤표지에 언급된 <시카고 트리뷴>의 짤막한 리뷰 내용처럼, 그런 작가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도 꼭 알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1. 가끔은 여러분이 살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이런 고마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어찌나 적은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엄청난 행운에 의해 이 우주의 모든 물질들 중 아주 적은 일부가 모여서 여러분이 생겨났고, 여러분이 존재하는 특권을 누리는 기간은 영겁의 세월 중 극히 짧은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시 무(無)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여러분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 놀라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하든 여러분을 태어나게 한 이 놀라운 성취에 조금이나마 비견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축하합니다. 잘 태어나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특별합니다.
2. 그러나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지구상에는 50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모두가 여러분만큼이나 중요하고 여러분만큼이나 신의 위대한 계획 속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의 배려를 고마워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피자를 배달하고, 여러분이 구입한 식료품을 봉투에 담아주고, 여러분이 어지럽힌 모텔 방을 청소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습관을 들이십시오. (p297-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