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독자에게 간접경험을 선사한다."라는 명제를 순진하게 받아들이자면, 2011년 초를 나는 꽤나 근사하게 보낸 셈이 된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잉글랜드로 날아가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20개 팀이 있는 지역을 차례로 둘러보았고(<곡괭이 싸커홀릭>), 다음으로 일본으로 날아가서는 일본의 아름다운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누비고 다녔으며(<일본의 걷고 싶은 길>), 그걸로도 모자라 종래에는 제주도에서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제주올레를 맛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확실히 이 정도라면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을 만한 환상적인 새해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슬픈 사실을 말하자면, 직접경험이 언제나 좋지는 않은 것처럼 간접경험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며 이건 그 이름만으로도 근사해 보이는, 이를테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여행'이랄지 혹은 '일본걷기여행'이랄지 또는 '제주올레' 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좋은 간접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경험을 솜씨 있게 전해주는 저자를 만나야 하고, 아울러 독자의 경험치나 성향도 간과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가 생각하기에, 독자로서 '간접경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교차를 가장 크게 느끼기 쉬운 분야가 '여행서'가 아닐까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새해 들어 처음으로 집어든 <곡괭이 싸거홀릭>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기본적으로 2009~20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참가중인 20개팀을 모조리 방문할 꿈을 가지고서 마침내 이를 실현한 한 축구팬의 여행기인 <곡괭이 싸커홀릭>에는 기대가 컸었다. 흔히 보던 축구 '전문' 기자의 식상한 형식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축구팬이 영국으로 날아가 좌충우돌하며 건져낼 자유롭고 생생한 프리미어리그 이야기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나 싶었다. 시작은 괜찮았다. 첫 번째 방문지는 런던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풀럼. 비록 풀럼의 경기를 보았다거나 풀럼의 경기장 내부를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풀럼 구장 주변의 사진들은 흥미로웠고, 특히 풀럼 공식 상점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들을 찍은 사진은 디자이너인 저자의 관심과 색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해서 즐거웠다. 두 번째로 풀럼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첼시를 방문할 때도 괜찮았다. 첼시의 홈구장과 그 주변의 모습에 대한 짤막한 단상과 사진들. 그리고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닮아 푸르기 그지없는 다채로운 첼시의 상품들과 그것을 느낌 있게 담아낸 사진들. 다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레퍼토리가 계속, 그러니까 정확히 20번이 반복되면 별로 괜찮지가 않다.

<곡괭이 싸커홀릭>은 이미 말했듯 프리미어리그 20개 팀을 모조리 둘러본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만만치 않은 여정이 단 20일 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의 절대적인 시간이 여행기의 질을 절대적으로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일은 20개 팀을 모두 둘러본다고 말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이 책에서 계속해서 주연 역할을 하는 건 '축구'나 '여행'이 아닌, 각 구단들의 다양한 엠블럼과 유니폼 색상만큼이나 다채롭고 화려한, 각 구단의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품'이 빠지지 않고 나오고, 그런 와중에 처음에는 흥미롭고 색다르게 느껴지던 장점들이 동일한 패턴 속에서 단점으로 탈바꿈하는 듯하다.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팀을 둘러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꿈이었으니 만큼 그것을 현실화시킨 것은 대단하다고 할 만하지만, '20'이라는 숫자에 방점을 찍어 '모든 팀'을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하다 보니 여행의 특별함과 생생함은 상당 부분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한정된 시간 안에 숙제를 해치우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여행에는, 필연적으로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헤어지는, '사람'과의 접점이 드물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이미 여러 권의 여행기를 펴낸 김남희의 <일본의 걷고 싶은 길>도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꽤나 실망할 뻔했다. 마치 국어 교과서에 예문으로 실리겠다는 듯,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는지를 기행문에 어울리는 간결한 현재진행형 시제로 써내려간 문장들은, 역시나 국어 교과서를 읽을 때면 대개 그러했듯 조금 따분했다. 약간 과장하면 저자가 일본여행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는데, 나는 여행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관심 가질 만한 보고도 물론 아니었다. 외려 나는 2권에서 다룰 '규슈와 시코쿠'에 대해서는 단호히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책을 읽으며 이 보고에 익숙해질수록, 그리고 특히 '사람'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수록 책을 읽는 일이 좀 더 흥미로워졌다. 저자는 일본에 사는 지인들을 여행 속에서 적극적으로 만나고 그러한 만남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따뜻함과 우의 그리고 한일 관계에 얽힌 그들의 생각 등을 접하게 되는 일은 꽤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편으로 저자가 너무 빈번히 지인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덕분에 이 여행기는 종종 '일본의 걷고 싶은 길'에서 '일본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둔갑하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내가 저자의 인맥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알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또 일본에 지인이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일본을 여행하란 말인가, 하는 심술궂은 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제나 다정한 오사카의 일본인 부모님, 평생토록 가까이 모시고 싶은 스승 신이치 선생님 가족, 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요코 언니 부부, 내 오랜 친구 마미코와 켄, 새벽의 계단 콘서트를 열어준 가케이 군, 열흘이나 나를 먹이고 재워준 테리와 마유미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여행은 무척 쓸쓸했으리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나로서도 이들의 등장이 반갑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의심의 여지없이 나는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고, 더욱이 딱히 내게 따뜻하게 대해준 것도 아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이 여행기는 무척 무미건조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물론 덧붙이자면, 이건 이 책에 대한 찬사의 의미만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이번에 읽은 세 권의 여행기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제주올레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서명숙의 두 번째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이었다(이 책을 단순히 여행서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명숙의 첫 번째 책 <제주걷기여행>에 비하면 이번 책은 좀 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는 내내 자그마한 감동들이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되풀이하여 밀려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려운 와중에도 초심을 지켜 '제주올레'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곁을 찾아들어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각자의 재능을 발휘해 '길'을 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 그리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변화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책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독자의 마음을 살며시 흔들었고,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가끔씩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울컥해 하기도 하면서 내가 생각만큼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공연히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물론 만약 여전히 내가 내 생각만큼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면 그건 그냥 책이 메마른 이의 감정마저 적실 정도로 좋았다는 뜻이니, 나로서는 어느 쪽이 맞든 별로 불만은 없겠다. 어쨌거나 책을 읽는 동안 행복함과 그리움에 감싸여 머지않아 직접 다시 제주도를 찾을 꿈을 꾼다는 게 적잖이 위안이 되었고, 생각해 보면 결국 아마도 이런 이유로 잦은 실패를 맛보면서도 끝내 여행 관련 서적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일 테다.

끝으로 여행기와는 무관한 한상운의 무협소설 <무림사계>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이 작가, 정말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무림사계>가 대단한 핵심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 무협소설이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한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를 끝내 감탄하게 한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대단한 솜씨라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내가 싫어하는 설정이란 무협소설에 강시나 기괴한 술사들이 지나치게 활보하면서 강호를 도산검림이 '무색한' 세계로 만드는 것인데, <무림사계>의 경우에는 배경을 서양인들이 중국에 출몰하던 19세기 무렵(아마도?)으로 설정하면서 무림인과 '총'과의 조우를 초래한다. 물론 총에 맞으면 무림인이라도 당연히 죽고, 이건 강시만큼이나 도산검림의 강호를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요소다. 게다가 <무림사계>의 결말 방식도 내가 별로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무림사계>는 자칫 한순간에 무너지기 쉬운 세계를 정말로 매끄럽게 끌고 나간다. 제목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스토리는 기발하며 구성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서도 깨알 같이 터지는 유머까지. 그간 보아오던 무협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하기에 단순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정도면 정말 최고의 무협소설이라고 해도 그리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1권에서 잠깐 등장할 때만 해도 그리 예쁘지는 않은 여자로 묘사된 앵앵이, 이후 6권에서 주인공과 재회했을 때에는 상당한 미색의 여인이라고 나와서 약간 의아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인 건 무협소설 속이라고 해서 딱히 예외는 아닐 테니까. 물론, 설령 그게 아니라 작가가 잠깐 딴 데 정신을 팔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지금 심정만 같아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라면 앵앵이 나중에 남자로 둔갑하다고 해도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남자의 '변심' 또한 무죄라는 단서 하에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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