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의 기적>은, 오히려 베른에서 있었던 '기적'이 그저 아무렇게나 갑자기 일어난 사건만은 아니었음을 강변하는 듯한 영화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베른에서 있었던, 서독의 기적 같은 승리를 다룬 이 영화는 서독이 기적을 쟁취하는 과정에 있었던 작은 사건들을 연결시키면서, '기적'이란 한 개인에게서 한 가족에게로, 나아가 축구 국가대표팀과 국가로까지 전이되는, 마치 작은 물결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듯한 일련의 흐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기에 베른의 '기적'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奇蹟'이었다기보다는, 차라리ㅡ그 이전의 소소한 기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ㅡ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알리는 경적, 즉 '汽笛'과도 같았다.
영화는 1954년의 월드컵을 주요 사건으로 다루면서도, 한 개인과 한 가족의 삶을 나란히 들여다본다. 러시아에서 전쟁포로로 지내다 십여 년 만에 살아 돌아와서는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불안해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조금은 어색하게 맞아들이는 가족은 당시 패전국이었던 서독의 음울하고 불안한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빛 정서는 전범국이란 낙인 아래 4년간 국제대회 참가자격을 박탈당해야 했던 국가대표팀에도 만연해 있고, 이것은 그들이 8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여 조별예선에서 헝가리에 8대3으로 대패 했을 때 극에 달한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이라는 패전국의 패배의식과 자조감은 개인과 가족과 국가, 이 모두에게 무겁게 쌓여만 간다.
하지만 끝내 '기적'이 벌어지기까지, 전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소년이 아버지의 작은 조언으로 동네 축구경기에서 활발한 몸놀림을 보일 때, 혹은 아버지가 홀로 축구공으로 저글링을 하다가 오버헤드킥을 하기 위해 허공에 몸을 누일 때, 혹은 맑았던 하늘에서 돌연 비를 내리기 시작할 때, 또는 결승에서 헝가리에 0대2로 뒤지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서독을 향한 응원이 경기장에 메아리 칠 때, 그리고 소년이 아버지의 도움으로 결승전이 열리는 베른에 마침내 몸을 나타냈을 때, 드디어 작은 물줄기들은 하나로 합쳐져서 거대한 '기적'으로 분출했다. 기적은 개인과 가족에게로, 또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국가로까지 면면이 이어졌고, 그런 이유로 '기적(奇蹟)'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이후에 서독이 경제적으로 부흥했다는 엔딩의 내레이션이 시사하듯, 앞으로 다가올 화합과 번영으로 나아가는 '기적(汽笛)' 소리였을 뿐인 셈이다.
개인과 가족에게서 벌어진 작은 화합과 기적이 어떻게 국가의 화합과 기적과 공명하는지를 감동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그저 뭉클한 가족영화로만 봐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1954년 월드컵을 배경으로 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몇몇 세밀한 에피소드들 덕분에 <베른의 기적>은 축구팬들에게 더욱 어필한 만한 영화가 되었다. 아디다스 축구화가 도약의 시기를 맞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나사식 뽕과 관련된 일화나 "축구공은 둥글다."는 축구계의 유명한 격언과 관련된 일화, 또 '헤르베르거의 악마적 계산'이 잉태된 헤르베르거 감독의 고뇌 등, 축구의 역사에서 흥미로웠던 순간들이 이 영화에는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특히 당시 서독 경기를 세심하고 현실감 넘치게 재현한 것은 가히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여러모로 <베른의 기적>,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마냥 기적만을 바라는 축구팬들에게 더욱 권할 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