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로미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남의 이름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건 분명 초딩이나 할 법한 짓이지만, 그게 비극의 주인공 줄리엣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조금쯤 다르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이름 따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개뼉다귀 같은 이름이라도 상관없지만, 하필, 이름이 다른 무엇도 아닌 '로미오'라는 게 유일하고도 중대한 문제가 될 때도 있는 법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로미오'라는 이름 자체가 문제인 건 전혀 아니다. '로미오'를 둘러싼 가문과 환경과 배경 등,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그 이름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데 근간을 이루어온 모든 것이며, 또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받아들여야 하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 이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택했고, 그들의 이름이 지닌 모든 것을 감내하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죽었다. 하지만 너무 심란해할 필요는 없다. 이 비극은 이름이 지닌 무게로 인한 필연이었다기보다는, 그냥 운이 좀 많이 나빴을 뿐이다.

만약 이름의 무게가 필연적으로 비극을 잉태한다면, 브라질의 유쾌한 로맨틱 영화인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하다>는 필경 비극으로 끝나야 마땅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브라질 축구 클럽 팔메이라스의 팬으로 운명 지워진 줄리엣이(심지어 이름조차도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니라, 팔메이라스의 전설적인 선수들의 이름을 조합하여 지어진 것이다!), 역시 운명이 코린티안스(팔메이라스의 라이벌)의 팬으로 점지한 로미오와 결혼을 한다니, 그게 어디 눈곱만치나 행복하게 끝날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미 제목에서 결론을 내 버리는 이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을 추구한다. 비극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데서 짐작되듯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 지닌 무게도 역시나 무거웠지만, 그들은 그 무게를 받아들이려고 했고, 그리하여 결혼에 골인했다. 그렇다. 이 희극은 운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경우다.

이미 대충 영화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알고 있고 결과 또한 안다면, 이제 관건은 '축구'라는 소재를 이용해 영화가 원작을 어떤 식으로 변주하는가에 있다. 영화는 축구의 라이벌 구도를 적절히 배합하고 실제 축구경기장의 모습을 차용하면서, 익히 알려진 이야기를 꽤나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물론 당연히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법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서로의 이름이 지니는 무게를 감당하려고 하는 연인의 노력만큼은 빠지지 않아서 각각 팔메이라스와 코린티안스의 열성팬인 줄리엣과 로미오가 상대팀을 인정하려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밋거리다. 이를테면, 한눈에 반한 연인 줄리엣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을 팔메이라스 팬이라고 속이며 팔메이라스 엠블럼이 선명한 줄리엣의 침대에 몸을 누이는 로미오의 모습이라든지, 이미 로미오의 거짓말을 아는 줄리엣이 팀에 대한 충성과 연인이 사랑하는 팀에 대한 증오로 번민하는 로미오에게 코린티안스 엠블럼이 새겨진 콘돔 하나를 건내는 모습 등. 서로의 이름을 둘러싼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두 연인의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줄리엣의 절절한 애원에 대한 유쾌한 변주로도 손색이 없다. "단지 저와의 사랑만을 맹세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케퓰렛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기에 라이벌 팀마저 기꺼이 품는다고 하여도, 그들의 사랑은 더 큰 시련과 필연적으로 마주한다. 영화는 팔메이라스의 열혈팬인 줄리엣의 아버지와 코린티안스의 팬임을 숨긴 로미오 사이의 긴장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늘어놓다가 모든 것을 일거에 터뜨려버린다. 그동안 예비사위를 자못 마음에 들어 하던 예비장인은 일변하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영화가 비극과 다른 결말을 향하는 건 앞서 말했듯 역시 운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걸로 뭔가 좀 미진하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의 엔딩과 함께 나오는 내레이션을 한 번 음미해 볼 만하다. 대단히 감동적이라거나 끝내주게 멋진 문구는 아니지만, 나름 그럴 듯해 보이는 그 문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사랑으로 초래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사랑이란, 자신의 이름이 뿌리 내린 공고함에서 벗어나 상대의 이름 뒤에 자리한 상이한 모든 것들을 용기 있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변화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결국 평화와 행복은 그 과정 끝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사랑의 결실인 셈이다. 뭐 물론, 운이 아주아주 나쁘다면 그저 명복을 비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음을 잊어선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늘 사랑한다면 그 공간은 사랑으로 변합니다. 사랑은 불을 녹이고 얼음을 태웁니다. 그리고 산들바람을 폭풍으로 변화시켜서 바다가 넘치고 집이 무너지고 나면 평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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