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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완결판 - 못다한 이야기>를 보기에 앞서 나는 내 나름대로 마음의 무장을 했다. 제목에서부터 언뜻 짐작되는, '국가'로 귀결되는 다분히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감정들에는 결코 내 마음을 쉽사리 내주지 않을 참이었다. 태극기가 자랑스레 휘날리고, 애국가가 감동적으로 울려 퍼지고, 함께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혹 영화가 비추기라도 할 양이면, 나는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서 기꺼이 냉소해주리라 마음을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물론, 딱히 '국가'가 밉다거나, 그런 감정들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단지 너무나 노골적인 듯한, 그래서 애초부터 이미 어떤 정형화된 '국가'의 이미지를 연상케하는 제목을 지닌 영화가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관객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의 이미지를 강요하는 데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면서, 나는 싸울 상대를 찾지 못했다. 당연하다는 듯 태극기가 나왔고, '어글리 코리아'를 말하는 미국 선수들과의 싸움이 있었고, 한국 대표팀을 소리 높여 응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정작 그 한가운데에 있는 '국가대표'는 지레 짐작했던 '국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엄마를 찾기 위해, 군대를 면제 받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또 감독의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이 국가대표가 된 순간, '국가'와 '국가대표'가 지니는 견고하고 답답한 이미지들은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국가대표라면 마땅히 지니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사명감과 애국심을 '국가대표'의 선수들은 누구도 지니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이 '국가대표'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차 보였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국가대표'가 그 각 '개인'의 선수들을 감당하기에 버거웠다고 말하는 게 더 합당한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선수들이 순수하게 국가대표로서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역시 선수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급조된 스키점프 대표팀은 유치 실패 이후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전혀 기대를 받지 못하던 스키점프 대표팀이 의외로 활약을 하자 갑자기 자랑스러운 한국팀으로 변모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쉬움 속에서 귀국할 때 그들을 반기는 건 위로와 격려가 아닌, 오직 승자에 대한 환호와 대비되는 씁쓸한 무관심일 뿐이다. 국가대표와 선수들은 그렇게 서로를 배반하기 일쑤고, 그래서 국가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선수'들과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한민국'일 때만 의미가 부여되는 '국가대표'의 조합은 다분히 공고화된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영화는 수시로 전복되는 이미지들을 무심한 듯 내어 놓는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국가'나 '국가대표'를 향한 감정들이 철저히 논리와 이성의 영역 밖에 놓여 있음을 조용히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대표'를 둘러싼 감정들의 찰나적이고 급작스러운 면모에 대해 날을 세우기보다는, 외려 한 발 물러나 오직 감정의 영역에서만 걸음을 옮기며 단지 감정을 분출해내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듯 보인다. 가령, 길러준 엄마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순간에도 낳아준 엄마를 찾으러 돌아다닌다든지, 역할이 모호한 말썽쟁이 딸과 끝내 모질게 인연을 끊어내지 못한다든지, 골프채를 휘두르며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던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다든지 등, 영화는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거나 혹은 관객을 정교하게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 대신, 순간적인 감정의 향연들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킨다. 그 감정들은 단계를 거쳐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만 찰나적으로 소비되고 곧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영화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과장되고 극대화된 감정의 분출이고, 그런 이유로 영화는 '비판' 대신 '배설'을 선택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선택은 영화 속에서 비 내리던 어느 날,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택과 사뭇 닮은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약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고, 절망에 채여 비틀거리던 그 순간,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고는 하나같이 스키점프가 주는, 아찔한 속도감과 하늘을 나는 듯한 쾌감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거기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국가에 대한 사명감도, 현실에 대한 냉철함도 없이, 그저 즉각적인 감정의 분출만이 넘쳐날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그들의 선택과 나아가 영화의 선택은 관객에게 충분한 감정적 고양을 선사하지만, 마치 스키점프 선수가 하늘을 나는 순간이 영원일 수 없듯이, 고양된 감정은 끝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키날이 대지를 디딛는 순간, 애써 외면했던 논리와 이성과 현실을 마주하는 일은 피할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듯한 짜릿함도 점차 사그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의 분출을 끝낸 영화는, 싸울 상대를 찾지 못한 관객을 총총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듯하다. 시원한, 그러나 조금쯤 허랑한 기분을 안긴 채. 이제 쇼는 모두 끝났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