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명절을 쇠러 할머니 댁에 갔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갑자기 어쩐 일인지, 시골에 위치한 할머니 댁에도 드디어 MBC ESPN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혹 주말에 할머니 댁에 올 일이 있더라도 EPL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했던 것도 잠시, 곧 나는 이번 시즌부터 EPL 중계권이 SBS SPORTS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었다(아, 이런 시방새!). 대단히 불행한 일이지만, 할머니 댁에 SBS SPORTS 채널은 나오지 않았고, 꽤나 불합리하기는 해도 그 실망감은 고스란히 SBS를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아, 이런 시방새!). 뭐, 물론 그게 SBS의 잘못은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SBS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시방새'라는 비속어로 종종 통용되어 왔는데, 축구팬이 그 비속어에 진심으로 동감하게 된 것은 SBS SPORTS 채널이 EPL 중계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물론, EPL을 반드시 MBC ESPN만이 중계해야 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어떻게 보면 비록 중계권료의 상승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SBS SPORTS 덕분에 그나마 EPL을 시청할 수 있게 된 국내 축구팬들로서는 오히려 SBS SPORTS에 고마워할 법도 하지만, 드디어 시작된 SBS SPORTS의 EPL 중계가 축구팬의 입맛을 맞춰주지 못하면서 축구팬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이다. 그러니까 축구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SBS SPORTS 중계에 실컷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외면하지 못하는,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SBS SPORTS는 EPL 개막전부터 제대로 헛발질을 했다. 애초에 방송해주기로 했던 경기가 현지상태로 문제가 생기면서 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후 다른 경기로 대체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SBS SPORTS는 이후에도 이청용의 데뷔전을 놓친다든지, 혹은 이청용이 결장한 리그 하위팀들의 대결을 보내주느라 많은 이슈를 낳았던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의 경기를 재방송으로 미룬다든지 하는 식으로 헛발질을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청용의 2호골이 터진 볼튼의 생중계 대신 일찌감치 박지성의 결장이 예고된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를 생중계 했는데, 그래놓고 이청용의 2호골이 터지자 어지간히 다급했던지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 중 그 장면을 잠깐 보여준 것은 물론 자막으로 수차례 이청용의 2호골 경기를 재방송한다고 광고를 해댄 것은 가히 자책골이라 할 만했다.
물론, SBS SPORTS로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경기를 일제히 생중계해 줄 수는 없거니와, 또한 축구팬들의 선호가 각기 다른 만큼 모든 축구팬들이 만족할 만한 편성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축구팬들이 느끼기에 기본적으로 SBS SPORTS에는 축구팬들의 대체적인 선호와 현재 EPL의 이슈를 짚어내는 능력 혹은 짚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특히 다른 것은 공교로운 일로 치부하더라도, 이청용의 2호골을 요란하게 광고해댄 것은 '조삼모사'의 전형으로서 SBS SPORTS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청용의 2호골을 알려주어서 다음에 녹화중계 되는 볼튼 경기의 관심은 한결 높아졌지만, 정작 해당경기에서 이쳥용의 2호골이 터진 초반 이후에는 이청용의 골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요컨대 축구팬들은 이쳥용이 2호골을 넣은 이후 약 70분 간 결코 그가 골을 더 넣지 못할 것임을 일치감치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이건 심각한 스포일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SBS SPORTS는 이래도 불만을 토하고 저래도 불만을 토해내는 축구팬들의 바람이 마치 하늘의 달을 따달라는 요구처럼 터무니없이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을 따주는 일은 실상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잠시 달과 관련한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옛날에 어느 왕국에 어린 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왕에게 하늘의 달이 예쁘니 그 달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공주를 끔찍이 사랑한 왕은 여러 대신들을 모아놓고 달을 가져올 방도를 논의했으나 신통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 신하가 재치를 발휘해 공주에게 가서 직접 물어 보았다. 공주에게 달의 크기를 묻자, 공주는 밤에 자기 방에서 보면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쯤 된다고 했고 곧 그러한 크기를 지닌, 달 형태의 보석을 만들어 주니 공주가 기뻐했더라는 게 바로 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실제로 이 이야기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거나, 혹은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이 조금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에서 SBS SPORTS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바로, 잘 모르거나 어렵거든 물어보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교훈을 적용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SBS SPORTS에게도 유,무형의 이득을 안겨다 줄 수 있다. 이를테면, 방송 편성표가 작성되는 일주일 전에, 일주일 후에 열릴 경기 중 축구팬들이 생중계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경기를 자사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하도록 한다면 SBS SPORTS는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축구팬들의 바람을 직접적으로 들어주면서 축구팬들의 호감을 얻어 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중계 중의 자막은ㅡ스포일러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ㅡ이러한 내용을 홍보하는 유용하고도 충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달이라도 가져다 달라는 듯한 축구팬들의 바람이 '미션 임파서블'이라기보다는, SBS SPORTS에게 축구팬들을 만족시켜줄 의지와 관심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SBS SPORTS가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해도 축구팬들이 SBS SPORTS를 외면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SBS SPORTS가 '국가대표 스포츠 채널'을 자처하고자 한다면, 혹은 MBC ESPN과의 비교열위에서 도약하고자 한다면, 또한 '시방새'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축구팬들이 바라는 '달'을 가져다주기 위해 좀 더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적어도 축구팬들이 바라는 달이 지구에서 약 38만 4400km 떨어진 '진짜' 달이 아닌 한, 저 하늘의 달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니까 말이다. 뭐, '시방새'가 꼭 마음에 든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모쪼록 '시방새'가 축구팬에게만은 '파랑새'가 되기를 조금쯤 바란다. 그리고 혹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국어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아 정확하지는 않아도 '시방새'가 별로 칭찬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