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기억력이 3초라는 금붕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는 종종 마치 금붕어라도 된 마냥 온갖 낚시에 번번히 걸려들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내 경우에 이런 일은 대개 인터넷에서 스포츠 기사, 특히 축구 기사를 읽을 때인데, 나는 제목을 보고 그 제목이 기사 내용과 별 상관이 없으리라고 확신하거나, 혹은 독특하고 흥미를 끄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사 내용은 허섭하기 이를 데 없으리라고 짐작하면서도, 어김없이 그 기사 제목을 클릭하고 곧 후회할 때 그렇게 느끼곤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고 보면 역시, 먹이를 먹은 사실을 잊고 끊임없이 주는 대로 먹이를 받아 먹다가 배가 터져 죽는다는 금붕어와는 사정이 다른 듯도 하지만, 인식하든 못하든 던져주는 떡밥을 언제나 날름날름 받아 먹는다는 데에서 나는 근본적으로 금붕어와 다르지 않은 기분이고, 말할 것도 없이 그 기분은 과히 유쾌한 것이 못된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을 금붕어로 만들 가능성이 높은 많은 기사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그 기사 제목에는 '박지성'이라는 세 글자가 들어갈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박지성 "테베스는 여전히 좋은 친구">라거나 <맨체스터 더비, 박지성의 운명은>이라거나, <웃음 터진 박지성> 등의 식으로. 물론, 개중에는 흥미로운 기사도 있을 테고, 또 그러한 제목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언급한 기사 제목은 그저 '박지성'이 들어간 제목을 임의로 나열한 것일 뿐이다). 박지성이 웃음이 터졌고, 테베스는 여전히 박지성의 좋은 친구고, 박지성의 운명을 점쳐 보겠다면야 뭐 어쩌겠는가. 여전히 그런 내용들은 축구팬들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고, 기사의 제목이 실제로 그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면 문제 삼을 이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때는 기본적으로, 궁금하지 않으면 안 보면 그뿐이다, 라는 말이 유효할 테니까.

하지만 그야말로 낚시가 분명해 보이는, 그저 축구팬들의 클릭을 얻는 것으로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기사와 그 제목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런 기사들은 축구팬에게 어떤 유용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전해 주기는커녕, 제목을 보고 기사를 선택한 축구팬들의 기대를 야멸치게 배반하면서 그저 화를 돋우기만 하기 일쑤다. 구체적으로 최근 박지성이 출전시간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나온, 소위 낚시성 기사들에 대한 기억을 대충 더듬어 보면, 주중에 A매치가 없었던 덕에 체력을 아낄 수 있었던 박지성이 선발 출전할 확률이 높다던 기사나, 박지성이 지난 경기에 쉬었기에 이번에는 선발 출전할 확률이 높다고 어느 영국 기자의 발언을 소개한 기사나, 또는 이번에야말로 체력을 아낀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에 선발 출전할 것이라고 구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 등을 들 수 있겠다(여기에는 당연히 주관이 개입된다). 물론, 줄곧 박지성이 선발 출전할 것 같다고 설레발을 치던 기사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박지성이 전혀 선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기에 해당 기사가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기사들이 기사로서의 자격에 미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잘못이라는 얘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조금 극단적이지만, 가령 맨유의 축구경기를 가위바위보 시합으로, 박지성을 '바위'라고 가정 해보자. 가위바위보의 주체인 퍼거슨 감독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가위'와 '바위'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어느 기사에는 <퍼거슨, 우리에게는 '바위(박지성)'가 있다>는 제목과 함께, '바위'가 선발 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담긴다. 그리고 어느 영국인 기자나 구단 관계자가, 퍼거슨 감독이 '바위'를 사용한 적이 드물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바위'를 낼 것이라고 말하면 또 어김없이 그 발언을 인용한, <'바위(박지성)', 선발 출전 할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곤 하는 식이다. 이런 기사들은 당연히 알맹이가 빠져있고, 더욱이 선발 출전에 대한 근거로는 심히 터무니없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에게 '바위'가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바위'를 몇 번 연속으로 안 내었다고 다음번에 꼭 '바위'를 내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당연히 축구는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언젠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인 '바위'와는 달리, 매번 계속해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있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누구도 퍼거슨 감독의 의중을 명확히 알 수 없음은, 이미 작년 모스크바에서도 절실히 증명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의 범람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러도 대답 없는 허경영의 이름과는 달리, 박지성의 이름은 그저 한 번 제목에 가져다 쓰는 것만으로도 축구팬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음이 명백하니, 읽히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는 기사가 박지성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사가 읽혀야 의미가 있다고 할 때, 그 기사는 그것을 읽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 또한 마땅히 성립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기사의 제목이 때로는 '박지성의 웃음'일 수도 있고, 혹은 '박지성의 친구관계'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박지성의 운명'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작 '기사'가 그 제목에 걸맞은 내용을 오롯이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누군가의 말 한 마디를 따와서 추측으로 일관하는 기사나 혹은 전혀 실제 내용과의 관련성이 적은 기사에 '박지성'의 이름을 마구 갖다 붙인다면, 그것은 축구팬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박지성에게도 대단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나는 박지성의 안티팬 중 최대 30%는 낚시성 기사에 낚여 금붕어가 되는 일을 반복하다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분명 선발 출전하리라는 기사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이 경기에 나오지 않으면 괜스레 짜증이 나고, 아주 가끔은 그 짜증이 박지성에게로 향할 수 있으니).

명백하게도, 박지성의 이름을 부른다고 건강해지거나 예뻐지거나 살이 빠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더라도, 아마도 대개는 박지성의 이름을 부르면 즐겁고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박지성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박지성의 기사가 있고 그 기사를 읽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고, 이것은 박지성이 여전히 맨유나 혹은 다른 팀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감히 박지성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고하노니, 그 좋은 이름을 한낱 떡밥으로 사용하지는 마시기를. 아무리 박지성의 이름의 효능이 막대하다고 해도 금붕어의 기분마저 좋게 해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려나 축구팬들이 금붕어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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