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격언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곧 '조중동'을 떠올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히 <중앙일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전했을 때, 거의 같은 수치의 득표율을 놓고 한쪽은 '과반수에도 못미치는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다른 한쪽은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제목을 뽑았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론, 어느 쪽을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평가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굳이 득표율을 따지자면 노무현 대통령 쪽이 0.2% 높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앙일보>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일보>가 원했던 것은 자명한 '숫자'가 아닌, 자명한 숫자를 '이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혹은 사실)를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조중동'의 왕초격인 <조선일보>가 빠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일단 '숫자'를 이용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조선일보>를 거짓말쟁이라고 놓고 보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하는 질문의 답은 너무도 명백하고 간단해서 심지어 하품이라도 나올 지경이다. 거짓말쟁이가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할 리 만무하니 거짓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과의 싸움은 필연적이고, 양자의 시시비비 또한 자명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언뜻 명명백백해보이는 듯하는 싸움을 큰 틀에서 통찰하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인용,분석함으로써, 양자의 싸움이 내포한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들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 싸움의 단초를 제공했던 '노무현 프로필 사건'부터 노무현의 반격과 경과, 그리고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공격한 이유와 노무현이 막강한 <조선일보>에 맞설 수 있었던 배경 등을 저자는 '공정하게 편파적으로'라는 기치 아래 사뭇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대목은, 여론을 주도하는 능력을 지닌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능력에 <한겨레>마저 휘둘리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두고 <조선일보>는 끈질기게 누무현에게 동조 혹은 반대를 강요했는데, 이러한 '친DJ 혹은 반DJ' 프레임에 <한겨레> 또한 가세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무현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분석하며,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능력의 막강함에 냉소어린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반대로,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타 신문사들이 동조하지 않았던 사례 또한 제시하면서, 그러한 경우에는 <조선일보>의 '노무현 죽이기' 의도는 확연히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결국 이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은 단순히 '<조선일보> 까기'를 넘어서, ''숫자(사실)'의 비판적 수용'으로 외연의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객관적인 관찰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누군가에게는 오로지 '편파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저자가 다름 아닌, 노무현의 적자라고도 불리는 유시민이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대단히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공정하다."는 김어준 딴지 총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이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물론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조를 의심할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외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판적인 태도를 <조선일보>(혹은 <한겨레>라 할지라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지닐 수 있는 '공정함'이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격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에서, '몰상식'의 거미줄에 빠지지 않기 위한 유용한 경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숫자(사실)'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숫자(사실)'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 ps.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을 두고 <중앙일보>가 상반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그런 내용을 접하고 당연한 '사실'로 믿었었는데, 검색을 하던 중 그것이 엄밀히 증명된 '사실'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았다(http://www.minoci.net/349). 어쩌면 이 경우도 내가 그저 믿고 싶은 대로, '편파적으로' 믿은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중앙일보>를 비롯한 '조중동'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털끝만큼의 동요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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