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소년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즈음이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오늘 하루를 되돌릴 수 있다면. 아니, 이왕이면 한 십수 년쯤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흥미진진해지지는 않을까?' 물론 이러한 상상이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쓰잘 데 없는 일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후회'라는 감정을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십수 년 동안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내 인생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감히 단언하건대 그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언제나, '후회'를 안고 '지금'을 살아가는 게 고작이니까 말이다.

아디치 미츠루의 단편 모음집인 <모험소년>은 이미 제목에 쓰인 '모험'과 '소년' 그리고 '시간'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7개의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은 유독 시간을 되돌리는 일에 천착하는데, '시간'의 건너편에는 바로 '소년'과 '모험'으로 대변되는 '과거'가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아직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소년' 시절, 치기만 하면 무조건 홈런이라도 될 것 마냥 기대에 부풀어하고, 영웅을 좇아 그의 흉내를 내며, 치기어린 꿈에 사심 없이 행복해하던 모습들이 되돌아간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자각하도록 만든다.

물론, '모험'으로 가득했던 '소년' 시절이 끝난 지금, '현실'의 무게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되돌아간 시간이 투영하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또한 어쩔 수 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뜬금없는 홈런을 기대하기보다는 확률 높은 안타를 노리고, 영웅을 동경하는 대신 한걸음 물러난 범인의 길에 만족하며, 꿈을 한구석에 밀어 넣고 지극히 현실적인 삶과 씨름하는 모습만이 '지금'의 시간을 삭막하게 채우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기 위해, '소년'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봉인해둔 타임캡슐 속 '소년의 꿈'은, 시간이 흐른 뒤에 지극히 생경한 '과거'로만 현현한다. 그것은 그저 아름답고 그리운 과거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절된 과거처럼 보인다.

아다치 미츠루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다분히 환상적인 매개체를 작품 곳곳에 등장시킨다. 이를테면 '도라에몽의 주머니'나 '시간의 계단'처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힘에 의해 주인공은 '단절된 과거' 혹은 '멈추어진 시간'과 대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환상과 상상이 아니라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냉혹한 시간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끊임없이 흐르는,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을 문득 깨닫게 한다. 수록된 마지막 단편 '스케치북'에서 멈춰진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낡은 스케치북에 그려진 소박한 꿈이 현재와 만나는 것도 아마도 그런 시간의 연속성 덕분이 아닐까. 

어쨌거나, 적어도 현실에서라면 어떤 환상과 상상을 동원하든 간에 결국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멈추어진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한 필요한 일이다. 그저 언제나 '지금'을 사는 게 고작이면서, 굳이 '소년의 모험'을 '과거'로만 치부하며 꽁꽁 싸매어 두기만 하는 것은 꽤나 애석한 일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모험'이란, 반드시 '소년'의 전유물만은 아닐 테니까. '쓸데없는 것' 사이에 묻혀버린 '소년의 모험'은, 그래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거다. 그리고 그럴 때ㅡ과거와 지금의 시간이 이어질 때, 비로소 '지금'을 사는 일도 조금은 흥미진진해지지 않을까. 굳이 시간을 되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린 커져버린 몸과 함께, 쓸데없는 것까지 키워버린 모양이군."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