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축구 클럽팀인 '에마1995' 소속 선수의 결혼식에서, 역시 '에마1995'의 일원인 어느 목사의 주례사가 결혼식장을 대신한 '에마1995'의 전용 연습장 위에 조용히 퍼져나간다. "부부는 환상의 팀웍을 발휘하여 가정의 골문을 굳게 지키고, 한 발 더 나아가 '행복'이라는 멋진 골을 터뜨리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어서 '에마1995' 팀원들이 마련한 선물인 월드컵 결승전 티켓이 신랑의 손에 전해지자, 신랑은 환희에 가득 차서 하늘을 향해 외친다. "오늘은 생애 최고의 날이야." 그러니까, 대체 결혼과 결승전 티켓 중 무엇 때문에?
영화 <내 남자 길들이기>는 축구에 미친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축구로부터 떼어내려는 여자들의 한판 승부를 다루고 있다. 사실, 대부분이 축구와는 완전히 담 쌓은 여자들이 'FC비너스'라는 축구팀을 결성해 '남자들의 축구 생활'의 존속 여부를 두고 '에마1995'와 축구경기를 벌인다고 할 때부터 영화의 리얼리티는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남자와 여자의 대결구도는 적어도 축구팬이 아닌 여자를 만날 확률이 높은 남자 축구팬에게는 꽤 현실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주제를 시종일관 가볍고 코믹하게 펼쳐 나간다.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승부를 설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FC비너스'의 의지만큼은 범상치 않다. 사실은 전 청소년 국가대표였던 여자 주인공(안나)이 대표팀 동료였던 현 여자 프로축구팀 골키퍼를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 그녀로 하여금 '에마1995' 팀원을 유혹해 관계를 가지게 하고(이것은 'FC비너스'의 선수는 1년 이내에 '에마1995'의 선수와 섹스를 한 적이 있는 사람에 한하다는 사전 계약에 기인한다), '에마1995' 선수의 동성 연인이 등장해 힘을 보태며, 팀의 연습장을 만들기 위해 풀들로 무성한 넓은 초지에 다소 엉성한 연습장을 만들기도 하는 등 'FC비너스'는 조금씩 축구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FC비너스'는 마침내 '에마1995'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물론, 결과는 이미 누구나 짐작할 만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마1995'와 'FC비너스' 선수들이 함께 축구를 즐기는 모습은 '축구'와 '사랑'이 반드시 대립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다분히 이상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제시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사실상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메시지다. 과연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 없는 사랑'은 문제가 없지만 '사랑 없는 축구'란 삭막하기 그지없으니 결론은 뻔할 수밖에. 다만, 문득 드는 의문 하나. '축구냐 사랑이냐?'라고 물으면 대답은 '사랑'이겠지만, '축구'를 '사랑'하면 이거야 원, 대체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