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제공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훌리건'은 "축구팬 중에서도 특히 열광적이며 집단 폭력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대개의 영한사전에서는 'hooligan'이라는 단어를 "무뢰한, 깡패"로 등록해 놓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부정적 인식 일색인 '훌리건'의 의미를 바탕으로 영화 <훌리건스(GREEN STREET)>에 대해 유추해보자면, 영화는 다분히 폭력과 광기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으리라 짐작되고, 아닌 게 아니라 <훌리건스>는 바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폭발적으로 분출하여 마침내는 붉은 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훌리건'의 삶을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미국에서 하버드대를 다니던 맷이 룸메이트의 마약소지 죄를 대신 덮어쓰고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죄를 덮어 쓰고도 달리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다소 내성적이고 소심한 맷은 매형의 동생인 피트와 만나면서 피트를 둘러싸고 있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매개로 하여 엮여진 훌리건들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한다. 그리고 GS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열혈 지지자들이 팀을 사랑하는 방식, 즉 다른 서포터와 충돌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증명하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거칠기 그지없는 방식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맷 역시 어느덧 GSE의 일원이자 '훌리건'이 된 셈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GSE의 활동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오직 폭력과 광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열정과 애정, 그것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용기와 의지,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 동료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의리와 신뢰는 화면 가득 펼쳐지는 핏빛 가득한 살풍경의 모습들을, 한편으로는 꽤 낭만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맷이 GSE에서 구원(救援)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자신에게 부족했던 어떤 남자다운 성향ㅡ다분히 마초적이지만ㅡ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거니와, 그러한 경험을 통해 결국 맷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을 곤욕에 빠뜨렸던 룸메이트 앞에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맷의 변화에만 주목하자면, 영화 <훌리건스>는 폭력과 광기를 다분히 미화시키는 것처럼도 보인다. GSE의 세계를 경험한 후의 맷의 변화는 그의 '성장'에 있어서 폭력과 광기ㅡ비록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ㅡ가 자양분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도록 만드는 탓이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이루어지는 '어느 훌리건의 죽음'은, 영화가 폭력과 광기의 극단으로 치달리려는 데 대한 서슬 퍼런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전 GSE의 리더였던, 피트의 형이 말하듯이 세상에는 축구보다 중요한 것들이 여전히 많고, 무엇보다도 죽음이 남기는 것은 폭력과 광기의 낭만적 결말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까지도 피폐하게 만드는 파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용기가 극단적인 폭력과 끝 모를 광기로 변화하는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팀의 승리를 갈망하며, 팀의 승리에 기뻐하며 부르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응원가가 그들만의 전쟁에서 진군가로 변하는 순간, 경기가 끝났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잔혹한 전쟁을 기어코 끝내지 않으려는 순간, 그리하여 마침내 필연적으로 어느 훌리건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순간, 영화는 폭력과 광기에 잠시나마 매혹되었던 사람들에게 그 매혹이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말을 가감없이 드러내준다. 그들의, 그들의 동료의, 혹은 그들의 적대자의 죽음이 이루어지는 순간, 폭력과 광기는 더 이상 열정도 용기도 신념도 아니라는 명징한 현실을.
미국으로 돌아간 맷이 흥얼거리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응원가는 결단코 폭력과 광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이 <훌리건스>가 보여주는, 의외로 낭만적이라서 당황스러운 '훌리건'의 폭력과 광기의 매력을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