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6>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은 바로 해남이었다. 문득 해남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유홍준이 쓴 <화인열전>의 '공재 윤두서' 편을 읽던 중이었는데, 윤두서가 그린 그림들의 다수가 해남본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물론, 윤두서야 해남 윤씨의 봉사손(奉祀孫)이니(본래 윤두서가 종손은 아니지만, 윤선도의 장손이 본처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해 윤두서를 양자로 들였다고 한다) 윤두서의 그림이 해남본가에 다수 소장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더욱이 윤두서의 그림들을 두고 이런저런 평을 할 재간이 내게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명문가로서의 전통과 명성을 여전히 지켜오고 있는, 그 고색창연한 '멋'을 나는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어디 그 뿐인가, 해남에는 이른바 이 땅의 '끝'이 자리하고 있기도 했으니, 나는 해남보다 더 완벽한 여행의 '시작점'을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울산에서 해남에 이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7시에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광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해남으로, 그리고 해남 버스 터미널에서 땅끝마을에 이르렀을 때에는 어느덧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광주에서 점심을 먹고 서점에 들르느라고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기는 했지만, 광주의 거리 곳곳에 날리는 '광주 비엔날레'ㅡ꽤 오랫동안 아마도 '비 오는 날'과 관련된 무엇이라고만 생각했던ㅡ의 깃발을 간단히 외면하고, 더욱이 광주 월드컵 경기장 표시가 선명한 표지판 쪽으로 향하고 싶은 열망마저 단호히 억누른 것을 감안하면, 무려 8시간에 달하는 소요시간은 퍽이나 억울하다.
그리하여 도착한 땅끝마을. 땅끝마을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은 대체로 "별 거 없다."는 한마디로 손쉽게 수렴할 수 있을 듯하고, 이제서야 말이지만 나 역시 거기에 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땅끝 탑과 땅끝 전망대를 둘러본 후에야 말할 수 있는 것일 뿐, 실제로 거기에 가보지 않은 이상 '끝'이 지니는 상징성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바다가 있고 높은 곳이 있다면, 적어도 '기본'은 한다는 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까 땅끝은,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았다는 의미.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 이 땅의 맨 끝에 서있는 사람이구나!'하는 느낌(내가 기대했던)은, 솔직히 없었다.
땅끝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5시가 조금 못 되었다. 자가용으로 이동한다면 모르되, 버스로 어딘가로 이동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벌써부터 숙소를 찾아 가는 것도 싫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어느 할아버지께 여기서 미황사까지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지를 조심스레 여쭤보자, 할아버지는 주변에 여기저기 물어보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우선 산정까지 버스로 타고 간 뒤 거기서 택시를 타는 편이 낫겠다고 알려 주셨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하여, 미황사에는 6시가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쪽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에 자리한 미황사의 고즈넉한 자태는, 그러나 퇴로에 대한 걱정 뒤에 잠시 가리어졌다. 이미 여행에 앞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미황사에서는 '템플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었고, 택시기사 아저씨도 그것을 다시 확인 시켜주셨기에 여차하면 여기서 자야겠다는 내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게 안 된다면 돌아갈 길이 꽤나 막막한 터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미황사에서 잠을 자는 건 실로 간단했다. 그저 일인당 3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그뿐이었다. 물론, 방 하나에 6만원이라는 가격을 무시할 수 없고, 특히 저녁 후 그리고 새벽 4시에 예불을 드리는 시간이 있다는 조항이 꽤나 부담스럽지만, 대신에 3끼가 제공되고, 무엇보다도 아침의 미황사를 누구보다도 빨리 독점할 수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혜택일 게 분명했다.
선뜻 템플 스테이를 신청하고는 미황사에서 저녁을 먹었다. 순 풀떼기 밖에 없는 식사야 당연한 일이지만, 배가 꽤 고픈 와중에도 그리 맛있지는 않은 걸 보면, 솔직히 맛은 별로 없는 듯하다. 물론, 그건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템플 스테이 접수를 받던 분은 예불은 그냥 뒤에서 참관하는 식의, 별 일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그게 '별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결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별 생각 없이 느릿느릿 대웅전에 당도하여 들어가 보니, 가운데 자리한 스님들 좌우로 단 두 줄로, 몇 개의 방석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중 빈자리는 앞줄뿐이었다.
드디어 예불이 시작되자, 우리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깊은 불심으로 스님을 따라 불경을 외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절을, 어느 순간에는 목례를,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에는 서고 앉기를 반복했다. 와중에 우리는 맨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남들이 앉을 때 서있기를, 서있을 때 앉기를, 남들이 경을 외울 때 멍하니 있기를 반복하며, 내일 새벽에는 결코 예불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은밀히 다짐했다. 모르긴 몰라도 부처님께서도, 차라리 그편을 더 원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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