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들을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있다. 진실을 말하는 대신 거짓을 말했던 순간, 용기가 필요했을 때 비겁하게 돌아선 순간, 우정을 외면하고 의리를 저버렸던 그런 순간들을. 그 중 어떤 순간들은 너무도 사소해서,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 쉽게 잊혀져 버린다. 하지만 또 어떤 순간들은 끝내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화인처럼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며 때때로 뚜렷한 기억으로 떠올려지곤 한다. 그리고 그때 그 기억이 야기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회한과 부끄러움과 고통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부유한 가정의 아들 아미르와, 그 집 하인의 아들 하산은 각기 편부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다. 아미르는 수니파인 파쉬툰인이고 하산은 시아파인 하자라인이지만,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둘 사이에 그런 것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즐거웠던 어린 시절은 어떤 한 '순간', 정확히는 1975년 겨울의 어느 날, 연날리기 대회 때 일어난 아미르의 배신으로 인해 비틀어져 버리고 만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라던 하산의 순수한 우정을 아미르는 한순간 외면해 버린 것이다.

이후, 실 끊어진 연처럼 표류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아미르는 바바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고, 거기서 만난 소라야와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바바)의 친구이자 어린 시절 자신을 깊이 이해해주었던 라힘 칸에게서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아미르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십수 년만에 돌아온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미르는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과 마주한다. 부족한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이 유일한 세계였던 아미르에게 낯선 아프가니스탄은 마침내 '진실'을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 바바가 숨겨야 했던 '진실'까지도.

사실 이 책 <연을 쫓는 아이>의 배경인 아프가니스탄은 조금은 낯선 곳이지만, 정작 내용은 그리 낯설지 않다. 역자도 지적하듯이, 아프가니스탄인인 저자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답고 정겨운 소소한 일상과 풍습은 물론이고, 그 속에 자리한 부당한 편견과 비참한 현실 등 모든 것을 솔직하게, 그러나 한결같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설 속에 생생히 묘사해 놓았고, 이로 인해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선명한 이미지를 수시로 구현해내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의 어떤 한 순간에 저지른 과오로 인해 고뇌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어두운 기억과 공명하며 조금은 무감각해진 상처를 살며시 건드리는 한편, 그러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덕분이다.

소설 속 아미르의 여정은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을 넘나들며 장대하게 전개되고, 그에 걸맞게 책 분량은 꽤나 두툼한 편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촘촘하게 연결되면서 어떤 부분에서도 방만하다거나 불필요한 느낌은 없고, 지루할 틈도 전혀 없다. 아주 어린 시절 아미르와 하산의 기억부터, 하산이 가장 좋아했던 '로스탐과 소랍' 이야기, 아내 소라야와의 결혼 과정, 그리고 아미르와 소랍(하산의 아들)의 만남까지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곳곳에 부여된 암시와 의미를 찬찬히 따라가는 재미가 실로 기대 이상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용기'와 '치유'를 통해 '속죄'의 길로 나아가는 아미르의 인간적 '성장'에 거듭 감탄하고, 한없이 감동받으며, 적잖은 위로를 받게 된다.

어쩌면 어린 시절 아미르가 저질렀던 한순간의 배신은 그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바바의 거짓이 얽혀 있었고,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의 뿌리 깊은 갈등이 설켜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유일한 한 가지는, 적어도 아미르는 그가 과오를 저질렀던 그 '순간'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했다는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아미르는 그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반면, 언젠가 하산이 이야기했던 '꿈'에 나오는 '괴물'은 '자신'의 대척점에서, 그러한 '순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과오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잔인하고 난폭한 아세프 같은.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과오'로부터 '회한'을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실 끊어진 '연'을 향해 달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연'을 손에 넣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적어도 마음대로 표류하는 '연'을 되돌리려는 '치유'일 테니까. 그리고 '괴물'이 아닌, '자신'이 되기 위한 '용기'일 테니까. 그리하여 '치유'와 '용기'로서 '연'을 좇아 천 번이라도 달린다면 '연'은 언제고 다시 날아오를 것이라고, 이 책은 가르쳐주는 듯하다. 마치 "삶이 언제나 계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결국 신이 용서할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신은 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너 역시 용서할 것이다.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길 바란다. 할 수 있다면 네 아버지를 용서하렴. 원한다면 나름 용서하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을 용서하거라.  (p4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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