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어제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올림픽 축구경기에서 나는 어차피 질거라면 내심 통쾌하게 지기를 바랐다. 그것은 이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을 두고 "사상 최초로 메달권에 도전하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이라고 말하는 게 나는 내내 불만이었고, 어제 MBC 축구 중계진의 편파적 멘트가 심히 불편했으며, 무엇보다도 어제 한국팀이 보여준 축구란 게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상, 이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위 말하는 '드림팀'이 아니거니와, '역대 최강의 팀'과도 거리가 멀며, 더욱이 예선전을 통해 대단한 전력을 보여준 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메달권" 운운하는 유일한 이유는, 지금껏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역사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까 딴은 틀린 말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그건 8강 토너먼트 진출도 버거운 현실에서 실로 섣부른 전망이자,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본적인 성급함에 더해, 어제 MBC 중계진의 중계 역시 꽤나 불만이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MBC의 강모 해설위원은 틈만 나면 상대선수를 깎아 내리는 악취미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본 대부분의 경우 그의 발언은 '화'를 불러왔다. 어제도 그는 비야레알 소속의 로시를 두고 "그리 빠르지 않아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선수"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로시는 한 발 빠른 움직임으로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넣었다. 게다가 비교적 공정해야 할 캐스터도 거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가령, 상대선수가 우리선수의 공을 뺏어서 우리선수가 넘어지면, "아, 반칙을 불지는 않습니다. 살짝 발을 건 것도 같은데요."라며 은근히 편파판정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했는데, 이런 건 정말이지 비겁하고 치사한 중계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제 보여 준 한국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그게 이탈리아의 기술적인 우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가 싶어 자못 씁쓸하기조차 했다.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인 유벤투스에 적을 둔 지오빈코를 맞아 한국선수들은 시종일관 거친 태클로 그를 자극하려 했는데, 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그러나 164cm에 불과한 작은 키의) 선수가 거푸 쓰러지고 흥분해 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한국팀이 악당처럼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주장인 김진규가 그를 팔로 세게 밀쳐서 넘어뜨리는 장면이 압권이었는데, 그때조차 중계진은 김진규가 말려들면 안된다며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그런데, 그런 김진규가 나중에 쥐가 난 상대선수의 다리를 풀어주려고 하자, 그게 올림픽 정신이라고 칭찬하는 모습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면에서 뒤진 한국은 이탈리아에 0대3으로 완패했다. 하지만 낙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이탈리아 감독이 브라질을 피하기 위해 카메룬을 이기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한국팀의 8강 진출에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는 기사도 있었다. 그리고 박성화 감독도 "온두라스를 상대로 다득점을 노리겠다."는 말로 화답했으며, 주장 김진규도 "아직 모든 것이 결정나지 않았다."며 8강 진출에 대한 의욕을 꺾지 않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가 카메룬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온두라스에 몇 점차로 승리하느냐에 따라 8강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의 승리와 한국의 승리를 가장 기본적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 기본 전제조차도 쉬운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막연한 낙관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러한 막연한 낙관과 비교해볼 만한 좋은 예가 프랑스에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레퀴엠>은 프랑스 대표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포포투> 8월호 참조). 특히, <레퀴엠>의 편집장은 "프랑스가 우승하면,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극언을 하기도 했는데,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대로 프랑스의 우승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레퀴엠>은 1면 전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고 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레퀴엠>은 틀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당시 프랑스 국가 대표팀의 위태로운 행보에 대한 거침 없고 냉정한 평가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망이란 건 당연히 틀릴 수 있지만, 적어도 손가락 하나 정도는 걸 수 있을 만큼의 무게와 확신이 <레퀴엠>에게는 있었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까놓고 말해서, 내가 감히 내 손가락 하나를 걸고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성적에 대해 전망한다면, 나는 이전이라면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메달권 탈락', 그리고 지금이라면 '8강 진출 실패'를 선택하겠다. 그건 물론 틀릴 수 있고,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틀리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내 손가락이 잘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말한 박성화 감독이 전적으로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의 도전적인 발언의 진의와, "메달 도전"이 당연한 듯 그것을 확대, 재생산시킨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에는 거기에 과연 '손가락 하나' 정도의 무게는 지닌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굳이 8강 진출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국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전망과 분석이 좀 더 현실에 기반하여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꿈'과 '희망'을 품는 것은 좋고 또 필요한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우리의 전력을 재평가하는 일과, 그로부터 냉정하고 장기적인 앞으로의 전망과 비전을 끌어내는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여전히 낙관적인, 근거 없는 장미빛 전망에만 의존한다면, 감히 내 손가락 하나를 걸고 말하건대(이건, 그러니까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은 아니다) 한국축구는 언제나 "사상 최초의 메달"만을 노려야 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