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나는 군대에서 누나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 녀석이 죽기 며칠 전에, 녀석이 아파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 그런데 그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 등의 사실을 이미 전해 듣기는 했었지만, 여전히 나는 녀석이 죽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녀석의 죽음은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 믿지 못할 소식에 과연 내가 뭐라고 말을 했었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누나가 녀석의 죽음을 알려주면서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고, 내게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도.

2#
사실,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라면 별로 말할 게 없다. 흔히 하는 분류로, 세상에는 개(혹은 다른 동물)를 가족의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고, 이 책 <말리와 나>는 전자의 사람들인 '나'와 가족들 그리고 래브라도 리트리버 수컷 개인 '말리'가 함께 엮어내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려고 하는 말썽꾸러기 개' 말리가 보여주는 좌충우돌 견생기(犬生記)가 꽤나 시끌벅적하여 일상이 범상한 것은 결코 아니기는 해도, 그렇다고 말리가 고양이처럼 우는 것은 아니고(아, 고양이 똥은 먹는다), 상근이처럼 TV에 나오지도 않으며(그러나 개봉되지 못한 영화에는 출연한다), 애견학교를 수석 졸업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하지만 애견학교에서 퇴학은 당한다) 일단은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실은, (이미 슬쩍 말했다시피) 이 책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말리가 보여주는 수많은 말썽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간혹 드러나는 말리의 충성심과 우정이 감동적이며, 사람과 개가 이루어내는 따스한 교감이 뭉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감정들의 한편에 '슬픔'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 어쩌면 이 책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이 행복한 이야기의 결말을 모두 말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나'와 '말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현실에서 존재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당연한 결말이기도 하다. 뭐, 그렇다. 현실에서 말리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하여 '말리'는 죽었다! 그것뿐이다. 단지, 말리가 인간 수명의 7분의 1을 사는 개인 까닭에, '말리'에게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죽음'이 찾아왔을 뿐인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슬픔'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것도 명백하지만,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그 당연한 이치를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사람은 '슬픔'과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행복'과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리가 보여주는 순수한 生의 기쁨과 한없는 애정은, 그것이야말로 '행복'과 '삶'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여실히 가르쳐주는 듯하다. 13년간 지속된 '말리'의 말썽도, 강인한 신체도, 한결같은 우정과 충성심도 결코 영원할 수는 없지만, 영원할 수 없는 만큼 그러한 일상이 주는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은 더욱 소중한 것이라고, 말리는 온몸으로 웅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리의 죽음은, 그토록 슬프지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과 죽음이 서로 무관하지 않듯이, 행복하기에 슬플 수 있고 슬퍼서 행복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골칫덩어리 개'로 살던 '말리'가 '훌륭한 개'로 죽으면서 남기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으리라.

"...골칫덩어리라고? 전혀 아니야. 한 순간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마, 말리."
말리는 이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이제까지 말리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말리가 죽기 전에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말리, 넌 훌륭한 개야." (p365)

3#
내가 '녀석'의 죽음을 실감했던 것은, 휴가를 나가서 집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앞에 도착했지만, 여느 때와 달리 개가 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언제나처럼 맹렬한 환대와 반가움을 보이던 녀석도 없었고, 녀석의 밥그릇도, 전용 화장실도, 녀석의 집도 모두 치워버린 후였다. 이제 더 이상 청소기를 돌릴 때 녀석이 시끄럽게 짖어 댈까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책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의자를 움직일 때면 밑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의자에 끼일까봐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외출할 때면 혼자 남는 녀석이 안쓰러워 걱정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드디어 녀석의 '죽음'과 '슬픔'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더불어 녀석과 함께 했던 모든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이었는지를, 나는 절감할 수 있었다.

짧은 휴가가 끝나고, 군대에 복귀하던 날 아침. 나는 누나의 말대로 잠시 절에 들러 녀석의 평안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내 눈가에도 언뜻 무언가가, 아주 잠시 맺혔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행복하지만 슬픈 눈물 한 방울이...

"안녕, 민경! 넌 훌륭한 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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