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 서평단 알림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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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도서입니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소위 높으신 분들이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는 소식이 종종 나오는데, 그때 그들이 하는 말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그런 일이 없다, 기억이 안 난다, 오해가 있었다" 등등, 그들은 주로 이딴 말들을 해대는데, 나는 그걸 볼때마다 도대체 저런 대가리, 그러니까 후안무치에 건망증에 대화불능의 대가리를 달고서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심히 궁금해지곤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궁금한 것은,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던 사람들, 그래서 더 얄밉고 혐의가 짙어보이는 그들이 잠깐 세간의 관심을 끌다가는 곧, 무혐의나 집행유예로 풀려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들의 '모르쇠'에는 무슨 신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디케의 눈>에 대한 신문광고를 보고 처음 떠올렸던 것은, 바로 그 '모르쇠'의 비밀을 혹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였었다. <한겨레> 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연재하여 법조계의 논란을 야기하였고, 결국 연재를 그만두고 검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저자가 못 다한 이야기를 한다면 무언가 큰 비밀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지나친 기대만은 아닐 터였기 때문이다. 물론, 후안무치에 건망증에 대화불능의 대가리가 탐났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대가리를 보면서 매번 분개해하느니 차라리 이쪽에서도 그런 대가리를 한 번쯤 달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런 대가리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모양이니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수사 제대로 받는 법'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은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란다 경고'에 얽힌 이야기와 '경찰차 뒷좌석'에서 들은 범인 진술의 증거효력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모르쇠'의 비밀이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사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히려ㅡ굳이 구분하자면ㅡ'수사 제대로 하는 법'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목이기도 한 '디케의 눈'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통해서 뚜렷이 드러나는데, 저자는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가 단순히 공정한 법집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반된 진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진실을 찾기란 매우 어렵고, 그래서 법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法)에 대한 인식이 어떤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자가 말하는 '쉽게 깨지는 유리병' 같은 법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뿐이어야 할 진실이 또 다른 진실과 맞붙고, 확실한 증거가 명백한 위증으로 드러나고, 재판이 오판이 되고, 창조론과 진화론이 뒤엉키는 등의 다양한 사건과 판례를 접하다 보면, 과연 유일한 '진실'과 절대적인 '법'이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지 조금씩 회의감이 들면서 저자가 말하는, 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서로 대립되는 논쟁점들을 가진 각 사례에 관한 저자의 친절하고 재미있는 설명을 읽다보면, "법은 언제나 아름다운 여인처럼 구애와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법이 어렵고 생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쉽고 논리적이며, 무엇보다도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애초에 이 책이 내 기대와 달랐다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미국 판례를 소개하는 데 치우쳐져있다는 점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막상 현실로 눈을 돌리면 법에 대한 인식은 또 일변해버리고 만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만 보더라도, 어느 강연에서 모 회사가 제 것이라고 떠들고 다닌 동영상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그 회사가 관련된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고, 백주대로에서 폭행을 행사하고도 '야당' 운운하는 사람이 있으며, 수천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도 경제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풀려나는 사람도 있는 게 부조리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공평해 보이는 법의 이면에는 또 다른 논리가 있다고 법의 유연함과 정당성을 옹호하지만, 그 논리는 현실 속에서 언제나 약자의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이 책은 사람들이 법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의도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이 책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법'과는 여전히, 상당한 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들려오는 소식이 하도 어이없는 것들뿐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자연히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여 이 책의 평가가 조금은 부당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자가 일종의 '고급 정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일반에 널리 알리다가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던 전력(前歷)을 고려할 때, 이 책이 '흥미로움'을 넘어 부조리한 현실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자못 아쉬운 일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디케가 눈을 감고 '삼가고, 또 삼가서' 법을 집행하는 것이 백번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언제나 약자에 대한 외면으로 귀결될 때, 그 눈을 가린 천을 기꺼이 벗겨서 약자의 실상을 똑바로 보게 하는 것이 또한 법조인의 의무가 아닐까. 솔직히 요즘 같아서는 디케의 '감은 눈'보다는 오히려 시민의 '뜬 눈'이 더 신뢰할 만하고, 그래서 디케가 부디 '감은 눈'을 뜨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너무 법을 불신하는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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