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벌어진 2007-2008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새벽에 있었던 생방송을 놓친 관계로 경기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오후에 있었던 재방송을 보고 몇 마디 말을 보탠다.

망할 퍼거슨? 망할 언론!

불과 얼마 전,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박지성은 2경기 모두 당당히 선발로 출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실 박지성의 선발출전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지만, 박지성은 퍼거슨이 택한 '의외의 선택'을 '탁월한 용병술'로 바꿔줄 만큼 열심히 뛰었고, 그 결과 맨유는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때 준결승전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느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그야말로 '꿈의 무대'에서, 더욱이 바르셀로나와 같은 세계적인 팀과의 대결에서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하는 것을 보는 일은 꽤나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박지성이 그 경기를 통해 상당한 활약을 한 것은 모두가 지켜본 바와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최후의 결전에, 정작 박지성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박지성의 선발출전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이라면, "망할 놈의 퍼거슨 영감탱이!"라는 욕설이 절로 내뱉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박지성의 선발출전을 예상하는 분위기였고, 최소한 무려 7명이나 되는 후보 명단에는 당연히 이름을 올리리라 생각했지만, 퍼거슨은 단호하게 그 모든 예상에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바로 "팀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한 마디로 말이다.

퍼거슨의 선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그러니까 그 망할 놈의 결과는 퍼거슨의 선택을 최소한 틀리지 않았다고 대변해주고 있고, 어쨌거나 결정권은 그에게 있으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유감스러운 것은, 박지성의 선발출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언론의 태도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의 모든 매체가 박지성의 선발출전을 예상한다느니, 이로써 챔스 결승전 사상 최초로 아시아인이 출전한다느니, 일본 언론에서도 아시아인의 자랑이라고 한다는 둥 설레발을 잔뜩 치더니, 결국 헛물만 잔뜩 들이킨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경기 후 언론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지금 뜨는 대부분의 뉴스는 퍼거슨의 선택에 대한 것인데, '냉혹한 결단'이라거나, '퍼거슨의 의중은 나니'라거나, '플레처는 갸우뚱'이라는 둥, 퍼거슨의 선택에 대한 의심과 반감만을 확대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 네티즌 마저 화났다며, 이를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로 몰고 가기도 한다. 물론,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어제까지만 해도 러시아까지 날아가서 러시아인들이 맨유 2군에 있는 중국선수 동팡저우는 모르고, 한국선수 박지성은 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언론(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지는 않겠지만)이 할 말은 결코 아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말이 이 경우에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재방송의 아쉬움

처음 밝혔듯이, 나는 이 경기를 MBC ESPN의 낮 재방송으로 시청했다. 재방송을 보기 전까지 나는 어떠한 정보도 접하지 않은 채 이 경기를 보았는데, 그것은 비록 생방송을 놓치기는 했지만 최소한 이 경기를 마치 생방송처럼 두근대며 볼 수 있기를 기대한 까닭이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콜스가 뜬금없이 피를 흘리기에 시간을 보니, 어느새 경기는 10여분 이상이 지나 있었다. 하여 불행히도, 나는 이 경기가 필연코 연장전까지 가리라는 걸 이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를 이렇게 단축시켜서 보여주는 것은 2시간 여 안에 모든 걸 보여주기에는 경기시간이 너무 길어졌다(즉, 연장전 승부)는 것 외에는 달리 그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방송을 안 본 건 전적으로 내 탓이다. 그러니까 생방송을 봐야한다고 말한다면 달리 할 말도 없다. 하지만, 재방송 또한 시청자들에게 내보내는 일종의 '상품'인 이상, 방송사가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방송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부득이 편집이 불가피하더라도 오늘과 같아서는 곤란하다. 이를테면, 뜬금없이 스콜스가 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든지, 어느 순간 갑자기 양 팀 선수들이 충돌하고 있다든지, 그 직전의 상황은 전혀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잘라서 불쑥 이런 장면들이 나오면 시청자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열심히(되는대로) 편집하여 경기시간을 팍 줄여놓고서는, 경기 후의 장면(시상 등)은 무려 30여분이나 보내주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마지막 우승의 감격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축구는 경기 자체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우승 후의 장면이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면, 거기에 적절한 시간을 진작부터 방송시간을 조정해 할당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건 차라리 하이라이트만도 못했다. 진작 '재방송'이 아니라 '단축방송'이라고 예고했으면, 누가 그 방송을 보겠는가. 그러니 '재방송'은 차라리 기만에 가깝다.

박지성에게는 박수를...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박지성 본인일 것이다. 스스로도 이번 챔스 결승전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중요한 경기를 벤치에서조차 지켜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퍼거슨에 대한 배신감이나 원망으로 이어질 것인지 또한, 오직 박지성 혼자만의 몫이다. 나 역시 심정적으로는, "망할 놈의 퍼거슨!"이라고 말하고 싶고, "차라리 맨유를 떠나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그건 결코 박지성의 심정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박지성의 팬이라면, 그리고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이는 열정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박지성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동일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쉬운 마음에, 그러니까 퍼거슨의 그 망할 놈의 '선택'에 분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박지성 본인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향후에 어떤 '선택'을 할지 조용히 지켜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가 취할 '선택'에 나는 미리부터 '존중'을 표하고 싶다.

올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이렇게 끝나버려서 정말로 아쉽지만, 이번 시즌 그가 흘린 땀방울에는 진정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한 마디 하자면, "다음 시즌에도 잘 부탁한다,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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