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6>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홍구공원으로 향했다. 홍구공원은 바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켰던 역사적인 장소다. 아마도 제법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는 모양인지 공원 한쪽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고, 거기에는 안내인이 상주하며 윤봉길 의사의 업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아니, 당연하게도), 그 안내인은 중국인이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진 곳이 중국이었고, 따라서 이 기념관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과 이곳의 안내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어쩐지 나는 상당히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중국의 안내인이 조금 못마땅하다. 더군다나 기념관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책 한권 사주시는 것이 애국입니다."라는 표어와 함께, 그리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책자를 판매하는 것도 영 마뜩찮다. 솔직히 말하자면, 홍구공원은 중국의 어르신들이 모여서 태극권(?)과 비슷한 몸동작을 운동 삼아 펼쳐 보이시는 일상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을 뿐, 외따로 떨어진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은 알맹이는 사라지고 그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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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다. 일제 치하의 암흑기 속에서 해외에서나마 대한민국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이어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간과하기 어렵겠으나, 불행히도 상해에 남아있는 임시정부의 옛 자취는 그저 쓸쓸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라는 간판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곳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임을 알지 못할 만큼, 주변은 황량하기만 하다. 건물 안에는 당시의 집기들과 자료들이 다소 보존되어 있고, 역시나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중국인이 설명까지 곁들여 주지만, 나가는 길에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기념품들의 홍수는 이곳이 그저 상품적 가치로만 남은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홍구공원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에서도 임정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건 내가 너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은 후에는 예원과 예원 옛거리를 둘러보았다. 예원은 하나의 장원인데, 장원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인공호수와 인공산을 비롯하여 기와 위에 장식한 용의 발톱까지, 모든 것이 매우 세심하게 꾸며져 있어서 장엄하다기보다는 그저 예쁘기만 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기와가 내려오는 처마(?) 끝 부분이 살짝 치솟아 있는 것인데, 흔히 보던 동양의 건축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예원을 나와서 예원의 연장이라고 할 만한 예원 옛거리를 잠깐 둘러보고는 외탄으로 갔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리 좋지는 않은 선택이었다. 사실, 상해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외탄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도 해가 버젓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늦은 오후에 외탄을 보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외탄을 장식하는 서양 건축물들의 화려한 외양을 자세히 식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낮의 외탄도 나쁘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보았던, 외탄의 밤이 보여주는 매혹에는 아무래도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외탄의 한쪽에 흐르는 황포강의 건너편에는 동방명주타워를 비롯한 높은 건물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으나, 날씨가 흐린 탓인지 어쩐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저 엷은 막 저편에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저녁은 태가촌 디너쇼라는 것을 보면서 먹었는데, 이건 정말 최악이다. 듣기로 무슨 소수민족의 전통 음악과 춤이라는 것 같은데, 미안한 말이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 소수민족의 음악과 춤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내가 본 그들의 '쇼'는 너무 성의없는, 그저 구색갖추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마시청 서커스를 관람했다. 중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서커스라는 부연 설명을 굳이 귀담아 듣지 않더라도, 이 서커스에 감탄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커다란 항아리를 공중에 던지고 목으로 받는 묘기에서부터 이미 곳곳에서 놀람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것은 이 흥미로운 서커스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긴장감과 흥미가 최고조에 달한 것은 큰 원통에 5대의 오토바이가 들어가서 마치 서로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이리저리 치달리는 묘기를 보여줄 때였다. 5명중 단 한명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큰 사고가 날 것임이 자명하기에 보여주는 쪽도, 보는 쪽도 집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커스 중에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문구가 없더라도 행여나 그들의 집중을 방해하여 큰 사고라도 날까봐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 만큼, 시종일관 서커스는 긴장을 잃지 않는다.
서커스를 보고나서 엄마와 누나는 조금 슬퍼했는데, 그 이유는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대체로 꽤나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이는 묘기가 실로 대단하고 아슬아슬한 만큼, 그들의 훈련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고, 하여 그런 그들을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그러한 서커스를 얼마나 자발적으로, 또 열렬히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나는 그들에게서 아픔을 읽어내는 것은 유보하고 싶다. 그러나, 서커스가 끝나자마자 오토바이 묘기를 선보인 5명이 모두 무대 밖으로 나와 관람객과 사진을 찍어주고, 그 대가로 우리돈으로 약 만원을 받는 것은 무척이나 씁쓸한 장면이었다. 그들의 옆에서 정작 돈을 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그는 혹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 것인 줄 모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으면, 대단히 거만하고 거친 태도로 돈을 요구했다. 그 돈이 과연 고스란히 오토바이 묘기를 선보인 이들에게로 돌아갈 것인지 자못 의심스럽다.
마시청 서커스 관람을 끝으로 사실상 이번 중국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고, 이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비록 짧은 패키지여행에 불과했지만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여행의 끝남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어제 묵었던 호텔로 돌아갔다. 마침 생일을 맞은 누나의 생일축하를 겸해서 우리방에 모여 간단한 뒤풀이(?)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호텔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들고 있던 맥주 박스가 찢어지면서 네,다섯 병의 맥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버리고 말았다. 이국의 호텔 로비에서 느꼈던 그 당혹스러움이란! 하지만 정말로 고맙게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은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 진심으로 걱정해주었고(아, 물론 중국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도 별 도움이 안 됐던 어린 녀석들은 그저 즐거워하기는 했다), 이내 달려온 가이드가 가볍게 뒤처리(?)를 맡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여행이 패키지여행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했던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소란스레 저물고 있었다.
<2. 27>
첫날부터 여행은 결코 쉬엄쉬엄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실 나는 첫날부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이 끝날 때가 되자, 무척이나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이 아쉽기 그지없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끝내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부질없는 몸짓일 뿐이다.
* ps1.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단점은 자유시간이 부족하고, 반면 쇼핑시간은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현지가이드로부터 그와 관련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일단 개인당 3만원씩 내게 되어 있는 현지가이드 팁은 고스란히 여행사로 들어간다고 한다. 게다가 현지가이드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체제가 아니라,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는 것에 따라 커미션을 받아 수입을 내는 체제라고 한다. 그러니까, 현지가이드가 관광객에게 과도한 쇼핑시간을 주는 것은 그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관광객들이 쇼핑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가이드가 오히려 손해를 보기에, 가이드는 관광객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런저런 쇼핑으로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차라리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실질적인 관광시간이 느는 쪽이 훨씬 나을 테지만, 비슷한 코스라면 아무래도 좀 더 싼 여행사를 이용하는 게 인지상정이니 만큼 여행사들이 가격경쟁을 하는 것과, 그 와중에 여행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악순환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설사 적정한 가격으로 여행의 질을 높였다하더라도 실제로 다녀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적정 가격의 여행상품을 그저 믿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 ps2. 25살의 조선족 청년이었던, 우리 여행의 현지가이드는 우리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황산 코스로 또 다시 떠난다고 했다. 그는 3박4일 내내 잔기침을 심하게 했고, 추운 날씨에도 얇고 낡은 재킷을 걸쳤으며, 상해에 동료와 함께 살며, 그의 어머니는 인천에서 일을 하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동방문화원에서 일인당 만원씩을 내게 하고 이동차량(?)을 이용하게 했을 때 나는 그를 의심했고, 지금도 그 의심을 거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맥주를 대접하고자 했고,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던 그가 부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누며, "덕분에 즐거웠다."라는 말 따위 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가 부디 인천에 계신 어머니와 곧 만나서, 확연히 드러내던 외로움을 조금은 덜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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