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처음 중국에 가게 되었을 때와는 달리, 사실 이번의 중국행은 그렇게까지 설레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 북경여행 이후로 쭉, 나는 좀 더 자유롭고, 어떤 의미에서는 방황한다고까지 해도 좋을, 그런 여행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중국여행은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고, 무엇보다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한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아빠를 위한 여행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어쩌면 앞으로 그러한 시간을 다시 가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지리란 점에서, 이번 여행은 아마도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듯하다.
(* 이 글은 2008년 2월 24일부터 2월 27일까지 있었던 3박4일간의 중국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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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4>
평소에 자던 가락이 있는지라, 오늘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밤에 일찍 자지 못했고, 결국 버틸 때까지 버티다 역시나 꼴찌로 일어났다. 그러고도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중국이 내 꿈(잠)보다 좋을 소냐!" 라며 자못 호기롭게 외치기까지 했으나, 느긋한 입과 달리 씻고 준비하는 몸은 부산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취약한 우리 가족은 한바탕 난리를 치고서야 겨우 부산 김해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리고 김해공항에 도착해서 일행과 합류해서 티켓팅을 하고 김해공항을 뜬 것은 9시 40분. 그러니까 본래, 여전히 잠에 취해 있을 시간이다.
상해의 푸동공항에는 한 시간 느린 중국 시간으로 10시 30분쯤 도착했다. 이 푸동공항은 아시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큰 공항이라는데, 어차피 공항을 구경하러 온 것은 아니니 내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입국 심사를 위해 대기선에서 줄서는 일이 영 지루하기만 하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어 걸어가니, 뜻밖에도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헬로!"하고 인사를 건넨다. 엉겁결에 나도 "헬로!"하고 인사를 하자, 그제야 괜스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여전히 주위를 둘러싼 한국인들 틈에서 처음으로 '외국'을 인식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베이징 공항에서의 그 무뚝뚝했던 직원의 표정과 대비되는 이 곳 직원의 표정에, 나는 갑자기 반가워졌다. 어쩐지 이번 여행의 느낌이 좋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성급한 것일까.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서 곧바로 버스를 타고 항주로 향했다. 3시간을 넘게 중국의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고속도로야 그다지 별 다를 게 없다지만 중국인들의 운전 매너는 꽤나 안 좋아 보인다. 운전대를 잡으면 인격이 달라지는 것은 내게도 남의 일만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경우는 좀 더 심해 보인다. 하기는 시내에서도 전혀 신호를 지키지 않는 편인데, 고속도로에서는 오죽 하겠는가. 물론, 문화적,역사적 차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그것을 나쁘다고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본 바로는 그렇다.
중국인의 공중도덕에 대해서는 한 가지 더 개인적 경험을 말할 것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이용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붐벼 볼일 보는 사람 뒤에서 줄을 서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옆에서 갑자기 중국사람 한 명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새치기를 하는 것이다. 뭐라고 말은 못하고(중국말을 못하니까!) 그저 뒤에서 째려봐 주었는데, 그는 나를 한 번 살짝 쳐다보고는 시끄럽게 떠들며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째려보는 것도 그만두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곳곳에서 그의 말에 대꾸하며 용변 보는 일행들이, 실로 많았던 것이다. 슬쩍 내 일행들을 둘러보니, 중학생 치고도 꽤나 작은 축에 속하는 녀석 2명이 전부다.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그저 참는 수밖에...
"上有天堂 下有蘇杭(상유천당 하유소항 -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한때 심취했던 무협의 세계에는, 정말로 지치지도 않고 이 말이 거듭 나왔다. 그래서 이 말은 거의 박제화 되어 신선함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머리에 단단히 각인되면서 소주와 항주에 대한 묘한 기대를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버스가 항주 톨게이트를 통과해서 드디어 항주에 들어섰을 때, 땅 위의 천당이 펼쳐지기를 바랐던 것은 결코 내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주의 첫 모습은 기대와는 조금 다르다. 기껏해야 몇 시간도 안 되는 경험에 따른 부당한 편견이지만, 천당은 선택받은 소수의 유희공간이지만, 항주는 여전히 넘쳐나는 다수의 생활공간이랄까(당연한 말이지만). 어쨌든, 무협의 세계에서 묘사되는 항주의 불야성과, 특히 미인들을 나는 보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항주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곱고 멋있는 도시"라고 했다지만, 지금은 무려 8세기나 지난 21세기이고, 어느 시인은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좋다."고 항주를 칭찬했다지만, 내가 항주를 둘러 본 것은 아침도 아니고, 저녁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가 온 것도 아니었으니, 난들 어쩌랴.
항주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서호를 찾은 것은 4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하늘에 뜬 달과 그대 눈에 뜬 달, 그리고 호수에 뜬 달" 어쩌고저쩌고(실은 잘 모른다) 하는 이태백의 그 감성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지만, 시간은, 아니 단체여행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다. 4시부터 유람선을 타고 그나마 서호에서의 매력적인 뱃놀이를 기대하지만, 솔직히 이것도 밋밋하기만 하다. 호수의 중간 중간에 마치 섬처럼 조성된 장원들의 존재가 다소 신기한데, 어차피 이 서호 자체가 인공의 호수이니(그건 좀 많이 놀랍다) 사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서호는, 밤에 봐야 제 맛일 듯하다.
서호 유람을 마치고 나서는 용정차농원으로 이동했다. 작년에 북경에 처음 갔을 때는, 차를 파는 곳에 가서도 열심히 설명을 듣고, 시식용으로 내어준 여러 가지 차의 맛을 음미하려고 꽤 노력했었는데,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심드렁하기만 하다. 역시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와서 이것저것 차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해주지만, 그다지 듣고 싶지는 않다.
다음 코스는 송성가무쇼였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극장 주변에는 이미 한바탕 쇼가 진행중이었다. 몇 명의 배우들이 나와서 중국말로 뭐라고 떠들자, 주변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은 크게 웃으며 즐거워한다. 궁금하긴 하지만 중국인들의 머리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슨 말인지는 더더군다나 알 수 없다.
송성가무쇼는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에서 3막까지는 항주의 역사와 전설에 대한 것이다. 오늘 잠을 거의 못 자서 혹시라도 쇼를 보는 도중에 잠이 쏟아질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이 쇼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가 없었던 것은 4막이었는데, 의외로 가장 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던 것도 4막이다. 그것은 "세계는 하나다"라는 제목에 걸맞게 한복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나와 아리랑에 맞춰 춤사위를 벌인 까닭이다. 해외에 나와 듣는 우리 전통 가락은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에 있었으니, 새삼스런 애국심을 내게 기대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내가 중국에서 보고 싶은 것은 '중국적'인 것이지, 결코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북경에서 현대차의 범람에 살짝 고무되었던 것은 이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도, 단지 '아리랑'이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끄럽게 휘파람을 불어 대며 요란하게 환호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뭐,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저녁 메뉴는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거지 동파육인데, 그 맛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소동파에 대해서 말하자면, 소동파는 확실히 특이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저녁을 먹고는 홍루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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