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부터는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했던 기억이 없다. 그러니 이번 여름 휴가를 이용해 남해 쪽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한 것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던 셈이다. 주로 사찰들을 돌아볼 계획이라 여행이라기보다는 사찰 순례에 가깝지만, 어쨌든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 반갑기만 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5일부터 8월 7일까지 2박3일간의 남해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8. 5>
오전 9시에 집을 나서서 첫 번째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거제도였다. 그 곳에서 배를 타고 외도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서다. 오늘까지는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와, 일요일이라 필경 붐비리라는 개인적 예상을 이유로 외도는 내일이나 모레 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견해를 피력했지만, 일정상 지금의 코스가 편하다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나는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도대체 지도의 어디쯤 붙어있는 곳인지도 전혀 모를 만큼, 재능 있는 '길치'이기 때문이다. 뭐, 본래 내 의견이 그다지 강한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특히나 '길'에 대한 것이라면, 확실히 나는 할 말이 없다.
본래 새벽부터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의 특성에도 불구하고(물론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새벽을 싫어한다), 아침 9시라는 상당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지만, 거제에 도착해서 해금강 선착장에 이른 것은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여행의 첫날을 도로에서 거의 날려버린 셈이지만, 다행히도 기상청과 내 예상과는 달리, 날씨는 흐리긴 했어도 비는 오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3시에 외도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오랜만의 뱃놀이를 기대했지만, 배를 타는 것은 솔직히 하나도 재미가 없다. 배는 곧장 외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석들을 둘러보고 가는데, 배 구조 자체가 주변을 둘러보기에 그리 좋지 않아서 십자 동굴인가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따분하기만 하다. 이 지겨운 걸 대체 얼마나 더 타야 되나 걱정했으나, 의외로 암석을 둘러보고 속력을 내니 금세 외도다. 하기는 이 짧은 거리를 곧이곧대로 달렸다가는, 확실히 괘나 비싼 뱃삯을 받기 미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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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외도는 잘 알려진 대로 온통 인공의 섬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무인도였던 섬을 이렇게까지 변모시킬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기기묘묘한 식물들과 아름답게 꾸며놓은 길,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들이 시야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인공의 섬은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다. 인공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순수한 위대함과 감동을 전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외도의 아름다움은 시각적 현란함과 화려함이 넘쳐흐르지만, 거기까지가 아닐까, 하고 불현듯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섬을 가꾸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정성을 감안한다면 어떤 감흥이 없지는 않지만, 눈으로 가득 들어오는 놀라움이 오롯이 가슴으로 전해지지는 않는 듯하다. 어쩌면 정해진 시간 내에 이곳을 감상하고 떠나야한다는 규정 자체가 외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도는 아름답기는 해도 도저히 발걸음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무엇'은 없는 까닭이다.
외도를 한 바퀴 다 돌 때쯤 돌연 하늘에서 장대비를 들이 붓는다. 강한 바람까지 덩달아 날뛰어서 도저히 비를 피할 방도가 없다. 관람객을 내려놓고 주변에서 유유하던 배들이 일제히 선착장에 배를 대고, 사람들은 서둘러 배를 타기 위해 몰려든다. 외도 곳곳에서 분산되어 관람하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니 역시 적지 않은 인원이다. 그러니까 결국, 기상청과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이 예상이 맞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외도를 다 둘러본 뒤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배를 타고 돌아올 때에는 어느새 비가 다시 그쳐 있었다. 이미 옷은 물론이고, 신발까지 비에 흠뻑 젖은 터라 심술궂은 비를 원망할 법도 하지만, 비 덕택에 그리 덥지 않게 외도를 둘러볼 수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 여름에 선선함과 맑음을 동시에 바라는 것은 꽤나 욕심인데다가, 여행 중 맞는 이런 해프닝은 그다지 싫지만은 않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오늘 하루 동안 고작 외도 한 곳을 구경한 것은 확실히 비효율적이지만, 이동시간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제법 이른 시간이지만, 장거리 이동에 대한 피로도 풀 겸, 방을 잡고 근사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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