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실은, 이전에 <스콧 니어링 자서전>과 <조화로운 삶>을 읽었었지만,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스코트 니어링이 보이는 정직함,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과 의지, 그리고 고결한 정신과 지적 탐구심은 확실히 존경스러웠지만, 그것이 내게 오로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절대로 타협과 느슨함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성정은, 솔직히 많이 답답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니어링 부부가 함께 살며 보여주는 '조화로운 삶'도 본받을 만한 삶임에 분명하지만, 최소한 내게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보여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저, 그들은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드러나는 스코트 니어링의 생애와 생활방식, 그리고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은 진실로 감동적이다. 스코트 니어링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는 이미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바이지만, 헬렌 니어링의 눈으로 바라본 스코트의 삶은, 그에 대한 내 첫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헬렌이 소개하는 스코트의 편지와, 헬렌 자신의 스코트에 대한 서술에는 스코트의 애정과 섬세함, 그리고 유쾌함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고, 헬렌은 그런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몬트와 메인에서 직접 농장을 경영하며, 손수 돌집을 짓고, 채식주의와 비폭력주의를 추구하는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도, 마찬가지로 뜻밖에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농장생활에 대한 것은 오히려 이 책보다는 <조화로운 삶>이나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니어링 부부의 삶에는 '조화로운 삶' 이상으로 중요할 '사랑'이 절절이 스며들어 있는 까닭이다. 즉, 상류층의 편안한 지위와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스코트의 신념과 생활방식에 기꺼이 동조한 헬렌의 결단과 사랑이 그들의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필수조건이었던 셈이다.

누구나 그저 마다하고만 싶은 죽음도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 속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부일 뿐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수명이 다한 육체의 껍질을 벗고, 무한히 계속되는 우주의 섭리 속에서 새로운 영혼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저 상투적이고 관념적으로만 들리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100세에 이르러 자의로 곡기를 끊고, 의식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스코트의 모습과 더불어 장엄한 감동을 준다. 물론 이 장엄한 스코트의 '마무리'가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킨 헬렌이 있었던 덕택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헬렌의 사랑에 대해, 스코트는 동시대인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헬렌입니다." 하는 대답으로 화답한다.

명백하게 지속 불가능한 현대 물질문명의 위기 속에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 훌륭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대안은, 현재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거의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는 여전히 다소의 부담스러움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스코트 니어링의 엄격한 생애도 같은 맥락에서, 존경스럽되 불편함을 수반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삶의 지침을 담고 있고,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삶'의 대전제는, 의심할 바 없이 '사랑'일 것이다.

엄격하고 꼬장꼬장해 보이기만 하던 스코트 니어링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모시키고, 때로는 그저 불편해보이기만 하는 '조화로운 삶'을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고, 필연적으로 마주칠 두려운 죽음을 건강하고 의식적인 '마무리'로 승화시킨 매개체인 '사랑'. 서로 마주보기보다는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매개로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니어링 부부의 '사랑'. 나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바라건대 그 전에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융은 이렇게 썼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우리도 그와 같았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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