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어 보이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명백한 의무인 초,중학교를 마치고, 아무래도 의무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는, 여전히 약간의 의무감으로 대학교를 나왔고, 그 와중에 말 그대로 의무인 군대까지 무사히 다녀와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아니, 어른이 돼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스스로를 어른답다고 느끼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나 자신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자각일 뿐이니, 나는 이런 자괴감에 종종 우울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저자인 닉 혼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소중한 이야기'라는 부제에 이끌렸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런데, 내가 전혀 쿨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쿨한 윌 프리먼이 세상과 조금씩 관계를 맺으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나와 그리 공명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이답지 않은 마커스가 변화하는 모습도 나와의 접점은 드물다. 아마도 그래서겠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의 '성장'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마커스는 윌과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아이다운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듯하고,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결코 원하지 않던 윌은 역시 마커스를 매개로 하여 사회 속에서 관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마커스는 윌의 그 쿨함을 배워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인간 피라미드에 비유하기에 이르고, 윌은 마커스가 혼자 남겨진다는 사실에 대해 느끼던 그 초조함을 확연히 인식하기에 이른다. 요컨대, 윌이 벗은 '껍데기'를 마커스가 둘러쓰며 그들은 서로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성장'의 의미는 대단히 한정적이고, 또한 모순된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는 아이로, 어른답지 못한 어른은 어른이 된다지만, 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윌이 거쳐야했던 통과의례(껍데기)를 이번에는 이미 어른이었던 마커스에게 다시금 강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커스와 윌을 각각 따로 보면 분명 '성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둘을 함께 놓고 보면 그저 '탈바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어른'이 그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하지 않듯이, '성장'도 그저 어른다움과 아이다움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오히려 '변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마련인 것"이다. 더 이상 마커스는 조니 미첼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고 여느 아이들과 비슷해졌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기다움'을 잃어버렸다. 마찬가지로 윌 역시 그의 쿨함을 잃고 무방비로 거리에 노출되었다고 느끼지만, 대신 레이첼과 함께 할 명분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마커스와 윌을 통해 드러나는 '변화'이고, 이를 통해ㅡ이 책에 나오는 노래 제목, '이젠 양면을 볼 수 있어요' 처럼ㅡ'변화의 양면을 모두 보자'고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내가 의무적으로, 혹은 다소의 의무감을 느끼며 했던 많은 일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정한 바대로 따른 것이며, 어른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저 세상이 규정짓는 것일 뿐이었다. 거기에는 '나'가 아니라, 그저 무언의 강요와 획일성만이 있을 뿐이며, 이는 전적으로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로지 '어른'과 '성장'에만 집착하면서 그 이면을 보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어른'만큼 소중한 '소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아마도 이런 이유로, 나는 마커스의 변화에 흐뭇하기보다는 차라리 서글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어른이 된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꽤나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것은 '어른' 자체에 대한 집착보다도 '변화'의 양면을 직시하며, '나'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 더해, '책은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는 법'이라는 금언을 핑계 삼아, 나는 이 책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힘겹게 어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도 감히 추천하고 싶다.

* ps. 개인적으로 이 책에 종종 나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존재가 조금 의문이었는데(닉 혼비는 공식적인 아스날 광팬이 아닌가), 레이첼을 기다리던 윌이 희망에 차 문을 쳐다볼 때, 난데없이 맨체스터 유나이티 원정팬이 들어오는 대목에서 의문이 풀렸다. 이 책이 발간된 1998년을 전후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가 한창이었고, 이에 대한 허망함을 닉 혼비는 이런 식으로 달랜 것이 아니었을까? 닉 혼비 특유의 유머와 기발함도 좋지만, 실은 그가 이렇듯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축구팬의 행태는, 역시 어쩔 수 없이 더욱 더 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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