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쓰기 위해서 5시쯤 일어났다. 맘 같아서는 밖에서 산책이라도 잠깐 했으면 하지만, 아침에 유독 취약한 내 체질이 이국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바뀔 리는 없으니, 실상 일찍 일어났다고 정신이 깬 것은 아니다. 어찌어찌 아침을 챙겨먹고, 8시에 출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만 하다.
오늘 처음으로 간 곳은 동인당이었다. 여기서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한의원들에게 진맥을 받고, 아마도 간호원인 듯한 사람이 우리말로 통역을 해주는데, 다행히 나는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아니면, 내게는 한약을 살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한의원이 대충 흘려본 것인지도. 하여간, 아침부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자니 슬며시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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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코스는 바로, 그 유명한 만리장성이다. 드디어 북경 시내를 벗어난 버스가 산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들뜨기 시작한다. 버스로 제법 올라간 뒤, 케이블카를 통해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니, 조금씩 만리장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산의 능선을 따라 끝도 없이 구비 구비 이어진 만리장성의 그 장대함이란! 새삼, 이 놀라운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중국이기에 가능했고, 이를 이민족의 방비에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중국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일단, 만리장성을 짓기 위한 노동력이 어마어마 할 테고, 여기에 상주시킬 병사의 수도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 이 장엄함을 그저 케이블카로 오르내리는 것이 어쩐지 미안해진다. 하지만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만리(4000km)는 대략 이봉주의 마라톤 기록보다 조금 늦은 기록으로 꼬박 열흘을 달려야 도달 가능한 거리니, 뭐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그 일부나마 그저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만은 끝내 떨치지 못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와서는, 점심을 사위식당이라는 곳에서 먹었는데 매우 맛있다. 중국에서 먹는 현지식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회전선반(?) 위에 이런 저런 음식들을 올려서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는, 선반을 돌려가며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양은 넘칠 정도로 충분한데다가 계속해서 갖다 주기 때문에 남기는 음식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엄청난 중국의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국토에서 나오는 농산물 덕택에 굶어죽는 사람은 이제 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물론, 이는 지극히 여행자의 배부른 시각에 다름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점심은 특히나 맛있다.
점심 이후에는 사위식당과 붙어있는 쇼핑센터(?)에서 쇼핑시간이 주어졌는데, 지금까지의 자유시간에 비하면 너무 과하게 시간을 많이 준다.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여기가 가장 저렴한 편이라고 하는데, 시장에서 8위안에 팔던 것이 여기서 25위안이라는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데, 대체 뭐가 저렴하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뭔가 하나 사볼까 해도, 생각 외로 중국의 물가는 싸지 않아서 마땅히 살만한 물건이 없다. 한국에서도 즐기지 않는 쇼핑을 여기까지 와서 하려니,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유일하게 내 시선을 오래 멈춘 것이 있다면, 삼국지의 캐릭터들로 만든 피규어였는데, 역시 꽤나 비싸다.
지루한 쇼핑을 끝으로, 오늘은 저녁에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일찍 일정을 마무리하고 호텔에 들었다. 마지막 밤을 묵은 곳은 구화산장이라는 곳인데, 8000여 개의 객실이 있을 정도로 그 크기가 압도적이어서 모노레일을 이용해 건물 이곳저곳을 이동하게끔 해놓았다. 건물도 몇십 개나 되는데다가 여전히 증축중이어서,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객실도 준5성급 호텔에 걸맞게 괜찮은 편이지만, 지난 이틀간 묵었던 호텔보다는 조금 못하다. 그래도 내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번의 내 전용(?) 간이침대는 꽤나 훌륭하다.
저녁은 호텔의 약선식이었는데, 대체로 몸에 좋다는 것들이 맛까지 좋은 것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저녁을 먹고는 바로 온천으로 이동했다. 온천 가운데는 수영장이 있고, 그 주위로 온도가 다른 많은 온천탕들이 있는 구조다. 유감스럽게도 수영모와 수경을 챙겨가지 않은 관계로 수영장을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겨우 수영모 하나를 빌려서 돌아가며 수영을 했지만, 수심이 너무 깊고, 수영은 너무 오랜만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수영에 능하지 못해서 결국 물만 많이 먹고 말았다. 온천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은 너무 심심해서 일찍 나와 버렸다.
방으로 돌아오니 9시 40분이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밤임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간절하다.
<3. 2>
5시 30분쯤 일어나 8시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3박 4일이라고 하나, 실제로 3일을 돌아보는 것에 불과하니 매우 아쉽기만 하다. 10시 50분 비행기로 북경을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한 뒤, 울산에 돌아오자 한국시간으로 오후 4시쯤이었다. 드디어 돌아온 것을 실감하니, 지난 며칠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든 경험이 내게는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패키지 여행이라는 결정적 한계로 인해, 이번 여행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행에 대한 기대와는 사뭇 달랐지만, 한편으로는 기대와 달라서 더욱 좋았던 점 역시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기억들이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는 추억으로 남은 것은 넘치도록 큰 기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실, 그 동안 여행을 그리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여행의 묘미를 알 수 있을 듯하다. 다시 언제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될 런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 돌아온 나는 이제 또 새로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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