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공부에 약간의 취미를 가진 이래, 나는 언젠가 중국에 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내 일천한 한자실력으로 중국에 갔을 때, 과연 몇 자나 제대로 읽을 수 있겠는가마는, 한자공부를 하면서 나는 조금씩 중국과의 유대감마저 느꼈고, 때마침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읽고서는 중국행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생기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도 고대했던 중국행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의외로 나는 그렇게 기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행에 대한 내 열망은 조금 수그러들어 있었고, 중국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그러한 변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3박4일 간의 짧고, 자유롭지 못한 여행상품으로 중국(북경)에 가게 되는 것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중국행을 하루 앞둔 날 밤. 나는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했고, 상품이니 관광이니 하는 말로 이번 중국행을 폄하하려해도, 그것이 결국 떠남과 만남을 의미하는 여행의 하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내 조그마한 바람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2. 27>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고는 부산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인솔자를 비롯한 일행들과 합류한 후, 8시 20분 비행기로 북경으로 떠났다. 2시간여의 비행으로 북경에 도착하니 1시간의 시차로 인해 북경은 아직 9시 30분이고, 날씨는 매우 흐리다. 물론 새벽부터 서두른 덕이지만, 이 이른 시간에 북경에 있다는 것이 어쩐지 신기하기만 하다.
북경에 대한 첫인상은 결국 공항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흐린 날씨와 입국수속을 하는 직원들의 무표정은 매우 닮은 바가 있고, 당연하게도 양쪽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항 주변은 황량해 보이고, 직원들의 표정은 매우 경직되어 있다. 특별히 걸릴 무언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입국하는 여행객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뭐, 입장이 뒤바뀌어, 내가 언제나 그들의 자리에 앉아서 그저 흥겹기만 한 여행객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 이상으로 귀찮고 따분한 표정을 보일 것 같기는 하지만.
무사히 입국심사를 거친 후에는 부국해저수족관을 관람했다. 온갖 요상한 해저 생물들이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또 이런 수족관 관람 같은 건 처음이라 약간의 흥미도 있지만, 단언컨대, 북경까지 와서 하필, 이 녀석들 꼴을 보는 건 전혀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 녀석들은 넓은 수족관을 유유자적하는데, 나는 일행들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니, 이건 대체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 건지 모르겠다.
수족관을 나와서는,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 한국을 떠나온 지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한식을 먹자니, 중국에 왔다는 실감이 영 나지 않는다. 한식집은 한국 사람들로 넘쳐났고, 한국말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오후에는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둘러보았다. 동시에 1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임에 분명하지만, 주변을 살짝 둘러본 내게는 그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자금성도 그 크기만은 분명 놀랄만하지만, 워낙 동양식 건축물에 익숙해져있고,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어서인지 특별한 감흥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오늘의 흐린 날씨는 이 놀라운 스케일의 건축물들을 제대로 느끼기에 큰 방해가 되는 것임이 명백하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조양극장의 서커스 관람이다. 5시 입장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버스를 정차해 놓은 주변을 돌아다녔다. 특별한 무언가는 전혀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마음에 든다. 일단 너무 배가 고파서 수퍼마켓과 비슷한 가게에 들어가 빵을 샀다. 말이 통할 리 만무하나, 빵 몇 개를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배를 채우고 근처의 공원에 들어가니 공을 가지고 노는 꼬마아이가 있다. 슬쩍 다가가서 친한 척, "패스, 패스!"를 연발했지만, 이 녀석, 이런 간단한 영어조차도 모르는지,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가볍게 무시한다. 슬며시 공을 가로채서 성공확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내가 지닌 최고의 저글링 기술을, 다행히 실수 없이 보여주자 그제야 이 녀석이 "와~!"하는 반응을 보인다. 득의의 미소를 띠고, 맘 같아서는 더 보여주고 싶지만 가진 재주가 그게 다인데다가, 확률상 아마도 앞으로 4번은 실패할 터라, 그냥 같이 잠깐 놀아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때서야 비로소 이곳이 낯선 곳임을 새삼 깨닫는다.
5시에 맞춰 극장에 입장해서 팝콘과 콜라를 샀다. 팝콘은 그 기름기가 장난이 아니고, 콜라는 코카 콜라를 고른 줄 알았지만, 막상 사고 보니 그저 무늬만 닮았을 뿐인 중국 콜라다. 헌데, 콜라의 내용물은 지극히 중국 콜라다워서, 이것도 왠지 느끼한 것만 같다. 아니면, 그냥 버터 같은 팝콘의 느끼함을, 감히 콜라로서도 어쩌지 못했는지도. 서커스는 5시 30분부터 약 50분가량 진행되었는데, 초반이 너무 강렬한 반면, 나중은 조금 지루했고, 게다가 피로가 몰려 중반 이후에는 꾸벅꾸벅 졸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서커스는 나쁘지 않았다.
저녁에는 샤브샤브를 먹고, 이틀 간 묵을 호텔(로얄 플라자 호텔)로 향했다. 준5성급 호텔이라기에 충분히 기대를 하기도 했거니와, 실제로도 호텔은 매우 훌륭했다. 외관은 물론, 실내도 만족스럽다. 단 하나, 일행이 3명이라 한 방에 묵는 바람에, 내 몫으로 떨어진 간이침대가 약간의 파손이 있었던 점을 제외하면...
<2. 28>
7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8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첫 코스는 서태후의 여름 별장이었다던 이화원이다. 대체적인 외관은 자금성과 남매처럼 보이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관람할 여유가 없는 만큼, 무슨 특별한 감상을 말할 도리가 없다. 변명삼아 말하자면, 이화원이 여름별장인데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고, 그래서 이화원은 반드시 여름에 봐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이 키만한 붓으로 운동 삼아 바닥에 글씨를 쓰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은 사뭇 인상적이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로 가는데 갑자기 고구마를 가득 실은 자전거가 다가오며 "천원에 요섯 개!"를 연발한다. 어제 고구마를 사지 못해 매우 아쉬워했던 우리가 혹하는 순간, 뒤이어 자전거 두세 대가 더 다가오며, "천원에 일곱 개!"를 외친다. 결국, 고구마는 천원에 '요덟 개'까지 늘어났고, 그 과정은 경쟁이라기보다는, 웃음이 있는 일상의 느낌이라 마음이 포근해진다. 뒤늦게, 혹시 그들은 이런 식으로 짜고 장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사악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처음 천원에 6개라고 할 때 살까말까 고민하던 사람도 금세 천원에 7개를 넘어 8개에 이르면, 어쩐지 안사고 배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야 어쨌든 한국돈 천원을 내고 받은 고구마 8개는 정말로 크고 따뜻해서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다.
이어서 단체관광을 할 때에는 중국에서 의무적으로 들르게 한다는 실크공장에 갔다. 의무적으로 들르게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안내원이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여 공장을 관람시킨 뒤,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판매한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의 대부분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어쩐지 안내원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점심에는 북한에서 직접 인원을 파견해 운영한다는, '해당화'라는 유명한 북한 평양식 식당에 갔다.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가 접대객 여자 동무들의 미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에, 그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본성(?)으로 제법 기대했으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나 음식은 매우 깔끔했고, 맛도 괜찮은 편이다. 게다가 여자 동무들이 번갈아가며 북한 노래를 불러주는데,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매우 잘 불렀다.
오후에는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하나인, 왕부정 거리를 돌아다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시간이 그리 넉넉히 주어진 것은 아니나, 간만에 살짝 해가 모습을 드러내 보여서 더욱 유쾌한 시간이었다. 널찍한 거리는 일견하기에 한국의 번화가와 닮은 듯하지만, 조금만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중국색을 확연히 드러내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으며 간만의 자유시간을 만끽한다.
짧은 자유시간 후에는 인력거 체험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등 뒤에서 홀로 편안함을 도모하는 것은 조금 꺼려지는 바가 있지만, 이것이 그나마 자전거의 일종임에 살짝 안도하고, 북경의 골목골목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중간에는 여러 차례 잡지와 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는, 일명 '귀뚜라미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는데, 사실 이 곳을 왜 방문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현지 가이드의 적극적인 권유와 암묵적 강요에 의해 만 원씩을 더 내고 이곳이 추가되었지만, 불쾌한 추리로 귀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 코스는 발 마사지 체험이었다. 40~50분간의 발 마사지 끝에 모두 일률적으로 주기로 했던 팁 2달러를 나만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놓쳐서 못주게 되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다. 팁이 반드시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미 여행상품 속에 팁까지 전부 포함되어 있다고 하나, 다른 사람들 발을 마사지 해준 이들이 모두 받은 것을 나를 해준 사람만 못 받게 되었으니 그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불편한 마음을 끝내 떨치지 못하고 이동한 곳은 찻집이었다. 차로 유명한 중국에 온 것인 만큼 그럴듯한 찻집에 가는 것일 줄 알았는데, 실크공장과 비슷한 유형의 장소라 탐탁지 않다. 몇 가지 차를, 역시 유창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안내원이 설명을 곁들여 마시게 하더니, 결국 그러한 차들을 판매한다. 북경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중국인을 만나기란 매우 쉬운 일인데, 그것이 오직 상업적 목적으로만 가치를 지니는 것을 거듭 목격함은 결코 즐겁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대학에서 중국인 교환학생과 함께 수업하며, 그들의 유창한 한국말에 매우 놀라고, 한편으로는 뿌듯해 했던 기억이 괜스레 허무하다.
저녁에는 북경식 오리구이를 먹고, 7시 40분쯤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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