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축구대회 개막전에서 한국은 중국을 3:2로 꺾고, 30년간 계속된 무패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경기는 사뭇 흥미진진했고,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나는 경기를 보는 내내 소리를 꺼버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야 했다. 아무런 환호성도 들리지 않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은, 김빠진 맥주처럼 맥 빠지는 일이기에 끝까지 소리를 끄지는 않았지만, 오늘 경기의 중계는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았다.

오늘 경기중계의 내용을 다소 옮기자면,

중국선수들이 파울을 하면, "쓸데없는 파울로 그들 자신의 약세를 드러내는 행동"이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하는 파울은 "매우 적절한 파울"로 두둔되고, 그들이 심판의 판정에 만족하지 못해 주심을 쳐다보면, "어린아이들이 하는 행동"이지만, 우리가 그러면, "심판의 판정이 편파적인 탓"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공격은 "보기에만 요란하고, 실상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이후 우리는 두 골을 실점했다)", "그들의 세트플레이는 거칠고 조악할(잘 알다시피, 우리는 세트플레이로 한 골을 실점했다)" 뿐이다. 한편, 곽태휘가 파울을 하면서 넣은 골이 무효가 선언이 되자, "파울로 골을 저지하네요."라고 흥분한다(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골이든ㅡ심지어 파울을 해서 넣은 것이라도ㅡ인정한다면 축구는 성립할 수 없다). 결정적으로, 중국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자 오프사이드라고 난리를 치면서도(솔직히, 나는 이 장면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지만, 한 55%정도는 오프사이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세 번째 골에는 마냥 환호할 뿐이다(불행히도, 나는 이 장면을 꽤 명확하게 봤고, 그래서 99% 오프사이드라고 단언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것이니만큼, 여기에 '국가'라는 개념이 강하게 투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승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악의적으로 상대선수를 폄하하고, 반대로 우리선수들의 모든 행위는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중계에는 절대로 동의할 생각이 없다. 그러한 중계에는 오직 '대한민국'만이 있을 뿐이고, '축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역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팬이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그보다는 오히려 '축구팬'으로 남는 쪽을 선택하겠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고, 실수에 아쉬워하는 중계는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대한민국' '축구팬'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밖에 없는 축구중계를 보는 것은, 거품밖에 없는 맥주를 마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는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이 맥 빠지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맥 빠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내 오늘의 축구경기를 다 보고 만 것은, 김빠진 맥주를 싫어하고, 거품밖에 없는 맥주에 질색을 하면서도 한 모금의 '맥주'를 포기 못하는 '술꾼'처럼, 나는 천상, '축구팬'이기 때문이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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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태휘 결승골로 중국전 3:2 승리~!
    from 湘來's 空間 2008-02-17 20:35 
    와우~우리나라가 힘들게 3:2로 승 무엇보다 중국네티즌 中國網民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新浪網 을 보기 시작~과연 어떠한 반응들이 있을까요?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http://sports.sina.com.cn/n/2008-02-17/17223476991.shtml 방금 글을 번역할려고 하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개..욕들이 있어서 그건 생략하겠습니다.ㅡ,,ㅡ;; 실시간으로 중국왕민들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心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