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1 - 무량 스님 수행기
무량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따지고 보면, 한국인 목사님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파란 눈의 스님도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온갖 영어가 쓰인 티셔츠를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걸치면서도, 정작 한글이 쓰인 옷을 입은 외국인에게 관심의 눈초리가 집중되듯이, 파란 눈의 스님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더해, '왜 사는가'라는 선문답 같은 제목은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한층 더 가중시킨다.

물론 이런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읽기에는 '왜 사는가'라는 형이상학적 문제가 제법 부담감을 안겨주지만, 다행히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많은 제자를 키워낼 수 있었던 이유를 서양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저자는, 역시 마찬가지 방식, 즉 상대를 존중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명쾌하고 분석적이어서 쉽게 읽히는 편이다.

그런데, '쉽다'라는 것이 깊이의 '얕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 종종 '쉬운 것'이 가장 명확한 이해에 다다르는 첩경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저자의 쉬운 설명은 다소의 아쉬움을 남긴다. 과연 서양의 합리적 방식이라는 것이 동양의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인지 의문이고, 혹 진리를 지나치게 분석하고 설명하는 와중에 그 진의가 퇴색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고, 결정적으로 이 책은 미국에 한국식 사찰을 짓는 과정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원적 의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종교적 해석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Erik Berall이 숭산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에 귀의하여 무량이 되는 과정과, 캘리포니아 주의 모하비 사막에 전 세계의 수행자들이 모여들 수 있는 태고사를 짓는 과정은 사뭇 진지하고, 진정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자신의 고민과 소망, 그리고 부족함마저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오직 할 뿐'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또한 파란 눈의 스님이 우리에게 낯선 것 이상으로, 저자에게도 낯설었음이 분명한 동양의 종교와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통해서 내부에 사는 우리가 결코 알기 힘든 '외부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왜 사는가?' 마치 독자에게 던지는 듯한 이 화두는 분명 저자에게도 여전히 안고 가야할, 현재진행형인 화두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저자도 명쾌한 해답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직 모를 뿐'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무량 스님의 솔직함, 그리고 그의 치열한 고민과 실천적 수양 앞에서는 그런 화두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百覺이 不如一行"이라고 했으니, 실상 백 가지 화두조차도 그저 '오직 할 뿐'의 마음으로 하는 무량 스님의 삽질 한 번만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오직 할 뿐'인 실천이야말로 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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