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 이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요즘 정치권을 보면, 내가 어릴 때 도대체 왜 부모님께서 재미없는 TV뉴스에 열을 올리셨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치에 관한 한 나는 아직도 꽤 문외한인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비도덕적이면서 비이성적이고, 게다가 비상식을 넘어 비정상으로 치닫는 소식에 다소의 혈압 상승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가난한 휴머니즘>에서 한 정치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좀 더 따뜻하고, 훨씬 유쾌하다.

이 책은 카리브 해의 가장 작은 나라,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쓴 9통의 편지를 모은 것이다. 아이티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아리스티드는 세계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원조를 강요하는 선진국들의 오만과 기만, 그리고 세계화의 맹점을 폭로한다. 그리고 동시에 가난함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 아이티 민중의 존엄과 사랑을 소개하면서, 부유한 엄지손가락과 가난한 새끼손가락이 함께 주먹을 꽉 쥐는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편지에는 무슨 대단한 정책 수단이나, 탁월한 경제 성장의 방편 따위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네 번의 대통령 당선 이후,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로 물러나야 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아리스티드의 고결한 정신은 가히 지도자의 덕목으로서 새겨들을 만하다. 또한 아이티의 어려운 민중들을 부유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존엄으로써 그들을 대하는 모습은 그가 왜 아이티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런 아리스티드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아이티 국민들이다. 아리스티드가 망명지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며, 그의 복귀를 닭에서 나온 달걀이 다시 닭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어느 의원의 말에, 아이티 국민들은 온 나라에 벽화를 그리며 아리스티드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리고 이 재치 있고 열정적인 아이티 국민들이 그린 벽화에는, 손가락 하나가 달걀을 닭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쩌면, 결국 훌륭한 지도자와, 재치와 열정을 갖춘 국민은 닭과 알의 관계처럼 선후를 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에게 정말로 절실한 것은, 대단한 지도자나 정책보다도, 그저 국민의 '손가락 하나' 일런지도 모르겠다. 작금의 정치 상황은 매우 보기 싫지만, 그저 싫다고만 해서는 결코 달걀을 다시 닭 속으로 넣을 수 없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