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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색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왠지 이 책은 파란색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같은 색도 좋고, 넘실거리는 파란 물빛과 같은 색이라도 좋다. 어느 쪽이든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고, 청량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색이라야 그나마 이 책을 정의할 수 있으리라.
책 읽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겠냐마는, 왠지 이 책은 가까운 공원에라도 나가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하늘은 청명해서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은 선선해서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그런 날이라면 이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알맞다. 따사로운 햇빛이 실내에 가득 차거나, 혹은 커다란 창을 통해 밖에서 내리는 보슬비가 훤히 내다보인다면, 실내에서 읽어도 나쁘진 않겠지만, 역시 그걸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책을 읽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왠지 이 책은 느릿느릿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아니, 읽는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글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을지도 모를 사진들은 읽을 수 없는 것임이 당연하고, 그래서 만일 가능하다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진과 글에서 전해지는 서글픔, 따뜻함, 아쉬움, 설렘 등, 그것이 어떤 느낌인가는 아무래도 좋다. 설령 그 속에서 저자와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더라도 전혀 상관없다.
책을 단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왠지 이 책은 '매혹'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어울린다. 총천연색의 사진들과 그것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글,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여행이 주는 매력이 어울려 결코 쉬이 뿌리칠 수 없는 '매혹'으로 사람을 끌어 당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욱 현실과 유리된 환상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즈음, 여전히 이 책의 '매혹'에 휩싸여서는 왠지 '현실'을 인식해야만 할 의무를 느낀다. 온갖 색으로 표현된 사진들과 고급스런 인쇄 뒤에서 묵묵히 재료가 되어준 나무나 그 밖의 것들. 그리고 길 위를 다니는 사람들을 기꺼이 맞이해주는 길 위에 사는 사람들. 무엇보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항시 존재한다는, 너무나도 가슴 든든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수줍게 말하지만, 매혹으로 넘치는 이 책이 아무것도 아닐 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현실'이 없는 '매혹'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매혹'의 이면에 있는 '현실'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것이 없다면 '매혹'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임이 분명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