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의 은밀한 거래 - The Secret World Of FIFA
앤드류 제닝스 지음, 조건호.최보윤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과연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일 종목으로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는 단연코 축구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그 명백한 증거이고, 월드컵을 비롯한 세계축구를 관장하는 FIFA의 절대적 권력은 바로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라고 고민했다는 역자의 말대로, 이 책의 내용은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22명의 선수가 400그램의 조그마한 공을 매개로 엮어내는, 그 매력적인 경기에만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축구는 충분히 환상적이어서, 이런 축구의 이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 밖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FIFA 또한 이런 생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명백하다.

사람들은 FIFA의 회장인 제프 블래터의 연봉이나 각종 수당, 그리고 연금 등의 액수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고, FIFA 집행위원에 선정된 테세이라(전 회장 아벨란제의 사위)가 자국인 브라질에서 최악의 부정부패에 연루된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그에게 'FIFA 페어 플레이상'을 주는 것은 더더군다나 상관없고, 혹시라도 기꺼이 구입한 월드컵 암표 티켓이 사실은 각국 축구협회에 배정되었던 티켓이라 하더라도 역시 중요한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FIFA의 마케팅 회사가 3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하더라도, 이는 축구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의 이면에 대해서 궁금증이 남아있다면, FIFA의 전 회장인 아벨란제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이지리아 독재자의 소수민족학살에 대항한, 켄 사로-위와를 비롯한 '오고니의 아홉 명'에 대한 사형집행 반대집회가 세계적으로 한창일 때, 아벨란제는 분연히 나이지리아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독재자로부터 명예 부족장의 지위를 선물 받으며 1997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대회 개최를 찬성했다. 반대 여론을 무색하게 한, 양심적인 저항자들의 처형 집행이 있은 이틀 후, 아벨란제는 이렇게 단언한다.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앤드류 제닝스는 그러한 FIFA의 생각에 전혀 동조하지 않고 끈질기게 FIFA를 조사하여, 축구에 기생한 FIFA의 절대적인 권력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래서 축구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행태를 고발하고, 오직 환상적인 축구에만 심취해있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을 직시하도록 유도한다. 2002년 월드컵 개막행사에서 블래터에게 쏟아졌던 야유는, 바로 이런 노력의 결실이라 할 만하며, 여기에 유독 한국인들만 동참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축구의 이면을 직시하는 순간, 어쩌면 더 이상 월드컵은 마냥 즐거운 축제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 멋진 축구를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은밀한 부정부패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축구의 노력이 오히려 축구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마땅하고, 그래서 유쾌한 축구를 위한 노력은 더욱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는 물론 정치 따위가 아님이 분명하지만, 오히려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의 영국식 위트와 유머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버겁고, 회계와 관련된 사실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절대적 권력을 지닌 FIFA의 회유와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축구 그 이상의 것을 위한 저자의 노력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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