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 리더십
심재희.한화철 지음 / 메가트렌드(문이당)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분명 때는 무르익어 있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지도 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계적 명성에 낯설어 했던 것도 잠시, 어느새 맨유는 자랑스러운 '우리 팀'이 되어 있었고, 그 팀은 주말에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당시의 맨유는 리그 3연패를 노리던 첼시를 밀어내고 1위를 질주하고 있었으며, FA컵 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라 1999년의 저 역사적 트레블을 막 재현하려던 기세였다. 그리고 그 전면에서 팀을 이끌던 이는, 지난 20년 간 그랬던 것처럼, 바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바야흐로 시기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무르익었고, 따라서 <퍼거슨 리더십>이라는 이 책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 결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것도 그다지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맨유의 폭발적인 기세에 가슴 설레며 밤잠을 설친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일련의 흐름이 반드시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을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고, 현실적으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절반의 기쁨'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놀라울 만큼 이성적이지 못한 생각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절반의 기쁨' 수준인 내 기대가 그리 허황된 것이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이 책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난 십수 년 간 사보았던 책들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실망스러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심지어 나는 화장실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면서 혹 이 책을 변기에 빠뜨리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슬퍼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퍼거슨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의 마케팅적 측면까지 아울러 고찰해 보려는 이 책의 시도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의 지난 축구 인생은 당연히 필요한 내용으로 보이고, 맨유를 빛냈던 전설적인 스타들에 대한 내용도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다. 설령 그게 퍼거슨의 리더십과는 무관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면 단 몇 분 만에 더 상세히 알 수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느 한 부분도 만족스럽지 않다. 퍼거슨의 리더십 부분은 몇 가지의 잘 알려진 일화를 억지로 리더십의 여러 측면들과 결부시켜 놓았고, 퍼거슨의 축구 인생은 그저 사실의 나열에 다름 아니다. 맨유 구단에 대한 마케팅적 접근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맨유의 지난 스타들에 대한 얘기도 전혀 특별할 게 없다. 게다가 '맨유를 빛낸 레전드 스타들' 부분에 떡 하니 붙여놓은 아스날의 경기장면이라니. 그 파트에 사진이라고는 도토리만한 다른 하나를 제외하고는 오직 그 사진뿐인데, 하필이면 맨유의 레전드인 로이 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20번째로 좋아한다는 바로 그 아스날 사진이라니.

물론 사진의 경우, 단순한 실수로 넘어가줄 이해심 정도는 가지고 있다. 헌데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종종 권위 있는 책들의 구절을 인용해 책 내용과 결부시키려 노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인용된 내용의 가치는 책의 끝에 잔뜩 적힌 참고문헌의 수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내용도 빈약하면서 심지어 한 페이지의 몇 줄 안 되는 내용까지 요약해서, 하단에 다시 박스로 만들어 놓는 데는 정말 환장할 지경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도 그렇게까지 친절하지는 않으리라. 설마하니 무슨 시험에라도 나온단 말인가.

뒤늦은 후회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 책을 비난하기보다 애초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함이 마땅했다. 그리고 이미 사서 읽은 이상, 이러쿵저러쿵 하기보다 그저 책장에서 살짝 치워두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도 그렇게까지 융통성 없는 관계는 아니다."라는 닉 혼비의 말처럼, 이 책이 축구와 관련된 내용인 이상, 본래 내게는 그다지 융통성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다만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문제는, 이 책을 정말로 책장에서 과감히 치워버릴 것인가 이고, 다행스럽게도 왼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퍼거슨 할아버지의 표지 사진은 꽤나 마음에 든다. 물론 그 사진 하나에 12500원이 터무없이 비싸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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