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
컬린 토머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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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한국에 영어 강사로 와서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대마초를 밀반입하다가 얼떨결에 한국 교도소에 들어가서 사람 되어 나온 미국인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속어로 교도소를 '학교'라고 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정말 한국의 교도소가 '학교'가 되었다.

저자는 한국의 교도소에서 배우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저자는 한국에서 교도소 생활을 한 것이 미국에서 교도소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교도소 생활을 하는 것이 다양한 체험을 하고 문화(유형화된 삶의 방식을 모두 문화라고 한다면)를 배우고 일상 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난다는 점에서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많은 서평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독자가 읽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고, 낯선 문화를 체험한 사람의 기록이기도 하고,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낯선 환경에 처한 사람의 눈에 비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 기록으로 읽었다. 저자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아들 둘을 목 졸라 죽인 빅 그린이나 한국의 교도관, 동료 죄수들 등)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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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네버랜드 클래식 36
마크 트웨인 지음, 김경미 옮김, 도널드 매케이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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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고 보니 그 가치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어린 시절에 허클베리 핀을 읽었을 때는 골초에 게으르고 온갖 미신 외에는 매우 무식한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한 허클베리 핀을 보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는 말이 절로 나왔고 '불쌍한 허클베리 핀'을 도와주기는 커녕 아동학대를 일삼는 허클베리 핀의 아빠를 포함하여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어른들만 나와서 짜증났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 '명작 동화' 시리즈 '허클베리 핀' 애니메이션은 허클베리 핀이 워낙 착하게 나와서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명작 동화' 시리즈의 그림체를 싫어해서 끝까지 볼 수 없었다. (가장 싫었던 것은 '빨간머리 앤'이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내가 주목한 존재는 주인공이자 이 책의 이야기꾼인 허클베리이다. 지금 다시 보니 허클베리 핀은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의 동글동글하고 착한 어린애가 아니다. 차라리 고행석 화백이 허클베리 핀을 그렸으면 더 어울렸을 것이다. 톰 소여가 유치하고 꿈많은 소년이라면 허클베리 핀은 단맛 쓴맛 다 아는 어른이고 철학자이다. 게다가 허클베리는 요즘 말로 cool하다. 자기 주변 사람들이 존경하고, 맹신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허클베리는 우선 살펴보고 자신의 사유 체계 안에서 헤아려 본 다음에 받아들일 것인지 아닐 것인지 판단한다. 허클베리의 사유 체계는 물론 무척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그래도 허클베리는 주변 사람들보다는 합리적이고 판단력이 있다.   

허클베리는 자신의 판단력을 바탕으로 도망 노예와 함께 미시시피 강을 따라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이룰 가능성이 매우 낮은 목표를 향해 온갖 모험을 하며 이야기를 만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허클베리는 요즘 말로 말하면 '대인배'다. 더글러스 과부댁이나 윌슨 아주머니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짐의 엄살도 받아주고, 사기꾼들도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잘 상대해준다. 허클베리의 너그러움은 톰 소여가 짐을 탈출시키기 위해 벌이는 일을 돕는 장면에서 아주 꽃을 피운다.  그냥 짐을 밤에 몰래 풀어주면 그만이지만 허클베리는 중세 기사담에 취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돈키호테랑 다를 바 없는 톰 소여 기획, 각본, 감독의 스펙타클대하탈출극을 받아주느라 며칠 동안 생고생을 한다.(물론 가장 고생한 사람은 짐이다.)  

인생은 씁쓸했지만 글만은 정말 재미있게 썼던 마크 트웨인답게 중간중간 재미있는 표현도 눈에 띈다.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허클베리 핀이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논평하는 장면에서 쓰인 표현들은 참 재미있다. 읽으면서 피식피식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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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바나나, 보노보 - 언어학의 문제와 퍼즐 그리고 논쟁
닐 스미스 지음, 강용순 옮김 / 한국문화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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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가 집단의 유머를 좋아한다. 전문가 집단 유머의 특징은 '아는 만큼 웃긴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전문 용어를 알아야 하거나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내부자가 아니면 웃을 수 없는 유머는 내가 웃지 못하더라도 흥미를 느낀다. '그들만의 유머'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국의 언어학자 닐 스미스가 쓴 언어학이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유머집이다. 저자는 읽는 사람 재미있으라고 이 책을 썼다. 이 책 서문의 맨 첫 줄을 여기 옮긴다. "나는 지난 40년의 대부분을 언어학을 하면서 보냈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제 그 기쁨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을 읽고 아무나 웃기는 힘들 것 같다. 언어학, 특히 영국이나 미국에서 생성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소리내서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웃어야 할 지 웃는 대목을 몰라서 당황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몰라서 못 웃는 사람을 위해서 책의 뒷부분에 언어학 전문 용어에 대한 용어해설집을 실어 놓았다. 그렇지만 전문용어 해설집을 읽다보면 웃음이 싹 가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공범주 원리'니 '프로탈락 언어'니 하는 말을 모르더라도 이 책에는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뭐가 뭔지 몰라서 웃지는 않더라도 신기한 사실을 아는 맛으로 이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제시한 흥밋거리들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언어와 바나나와 보노보가 나온다.

 

저자 닐 스미스는 뇌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뇌신경이 손상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올리버 색스처럼 인간의 언어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20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지만 일상 생활은 불가능한 언어 서번트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시각과 청각에 모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뇌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선천적인 언어 능력으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태도우마(타도마법, 촉화법,Tadoma method)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한다. 크리스토퍼 이야기는 언어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급의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재이다. (2007년 1월에 닐 스미스가 한국에 왔을 때도 크리스토퍼에 대한 발표를 한 바 있다.)

 

이 책을 웃으면서 읽은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매력은  글 한 편 한 편에서 웃음과 동시에 찾아오는 알싸한 느낌에 있었다.  특히 '이론언어학자'와 '응용언어학자'가 자신들의 방법론만이 옳다고 싸우는 이야기나 '촘스키'라는 기표에 대해 논쟁하는 사람들에 관한 글을 읽으며 광대뼈의 주근깨가 확 달아올라서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연구자나 비연구자가 '당연히 그 의미이겠지' 하며 쓰는 언어학의 전문 용어들이 사실 그 의미가 아닐 수도 있으며, 어떤 전문 용어들은 '상투어'나 '관용표현', '당연한 존재'가 되어 오히려 학문의 목을 죄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아는 것인가?"  과연 '언어보편적'이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써야 적절한가, 범언어적 현상이란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일까? '인간의 생득적 언어 능력'이란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하나? '제2언어'란 무슨 뜻일까? '조기언어교육'에서 '조기'는 과연 언제인가? "네가 알고 있는 언어학 전문 용어들의 정의를 다시 확인해 봐. 특히 생성이론과 관련해서." 저자의 질문 어조는 유머러스하지만 따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낱개 포장된 호올스 사탕을 생각했다.  이 책은 짤막한 글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기에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어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어도 호올스 사탕처럼 귀와 코와 목구멍이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촘스키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기대하지 못한 기쁨을 발견할 거라고 했는데 나는 이에 동감한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하여 한국어로 읽게 해 주신 번역자(강용순, 강혜경)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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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자라는 우리아이 - 태어나서 첫돌까지
마릴린 시걸 지음, 김희진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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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돌 전의 아기와 멍하니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 이모,고모,삼촌, 육아도우미 모두 이 책의 내용을 실천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비싼 장난감이나 특별한 장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게으른 사람은 이 책대로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요가나 체조 책도 마찬가지 아닌가? )

 

이 책의 시리즈는 태어나서 다섯살까지 계속 이어지니 아기 키우는 사람은 일 년에 한 권씩 읽으면 되겠다. 이 책은 아기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만 이 책에 나온 월령별 아기 발달 사항과 당신의 아기의 발달 사항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 특히 당신의 아기가 너무 느리다고 느껴지는 경우- 절대 실망하거나 당신의 아기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낮은 월령의 아기 놀이를 반복하면서 당신 아기의 발달을 충분히 관찰하면 된다. 실제로 어떤 아기는 기지 않고 걷기도 하고, 성령 받은 사람 방언 터지듯 어느날 갑자기 여러 단어를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별히 아기의 발달이 느리다고 느끼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시기가 늦으면 아기도 당신도 고생한다. 육아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무척 중요하다. 아기는 정말 엄청난 속도로 자란다. 당신에게 한 달은 당신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지만 돌 지난 아기에게 한 달은 자기 인생의 12분의 1에 해당하지 않던가? 나는 어른의 시간보다 아기의 시간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돌 전의 아기에게는 매 순간이 역사적 순간이고, 매번 내딛는 걸음마가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암스트롱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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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관의 살인 -하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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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좋아했던 것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노리코 사사키, 추리 게임, 기차, 하나에 꽂혀 몰두하는 사람들(또는 오타쿠?). 이 만화의 1권 초반 4분의 1을 읽을 때까지 내가 이런 것들을 여전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두 권 다 읽고 나서 더이상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노리코 사사키 만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닥터 스쿠르'는 지금도 나의 베스트이다. 나는 지금도 직업으로 연구자를 택한다면 어떻게 살게 되느냐고 묻는 이에게 대체로 심심하게 살게 될 가능성이 높고, 심심한 삶도 나름대로 재미있다며 '닥터 스쿠르'를 읽어 보라고 권하곤 한다. 그리고  '못말리는 간호사'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러다가 '헤븐'에서 흥미를 잃었다. 노리코 사사키가 잘 다루는 캐릭터인 "변화의 여지가 없는 대책 없는 사람들"에 질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월관의 살인'에서는 철도와 기차에 미친 대책 없는 철도광들이 나온다. 철도와 기차에 미쳐서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타쿠는 자신의 관심사 외에는 사람이 죽거나 살거나 상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이 책 첫 권의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권 끝 페이지까지 계속 나오는 메시지이다.

 

한 때 '김전일'시리즈도 거의 다 보던 적이 있었다.  '김전일'시리즈는 일종의 게임이다. 읽고 나면 머리가 시원해지는 게임. 추리물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안양어린이유괴살해사건 이후로 사람 죽는 이야기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다. 누가 죽는다는 것,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김전일'시리즈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가 있던가?)

 

결론적으로 노리코 사사키의 만화를 좋아하거나, 밀실 살인 추리물을 좋아하거나, 기차와 철도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오타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나? 몇 년 전에 읽었더라면 정말 재미있는 만화라며 킹왕짱 강추를 날렸겠지만, 지금은 꿈자리가 사나울까봐, 그리고 자기 관심사에 미쳐서 남이사 죽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이상한 인간들 만날까봐 꺼리는 만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거저거 다 떠나서 '재미있는 만화'라는 것은 기록하고자 한다. 나야 손이 떨려서 표지도 들춰보지 못했지만 이토 준지의 만화도 '재미있는' 만화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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