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환장 속으로 - 엄마 아빠, 나만 믿고 따라와요, 세 식구가 떠나는 삼인사각 스페인 자유여행
곽민지 지음 / 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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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갔을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했었다. 장 봐서 숙소에서 마음대로 밥해 먹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거주 중심의 여행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엄마 생신이 껴 있어서 그랬나 싶기도 했다. 평화로운 사라고사도 좋아하셨겠지만, 해변도 있고 좀 더 버라이어티 한 발렌시아에 엄마랑 같이 한 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독서 의욕마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이건 정말 큰일이다- 요즘, 뭔가 재미있는 걸 읽고 싶다는 생각에 고른 여행 에세이였는데 바로 비혼의 딸이 은퇴한 아빠와 엄마를 모시고 떠난 스페인 자유여행이 담겨 있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바르셀로나를 거치는 동안, 딸이자 가이드였던 저자와 처음 자유여행을 경험하는 관광객이자 딸의 어설픈 스페인어도 자랑스럽기만 한 부모였던 두 분은 즐겁고 유쾌하고, 때로는 짠하기도 한 추억을 쌓아나간다.

 

 

전에 엄마와 떠난 베트남 여행에서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방향과 전혀 다른 전개로 진행되는 일정 속에 난감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기억들이 엄마를 스페인에 모시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나 싶다. 2층 버스 타고 라운드 트립으로 야경 보는 것도 귀찮다고 숙소에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 셔서 결국 혼자 구경하며 산발이 된 머리로 페이스톡으로나마 엄마한테 실시간 생중계를 해드리기도 했는데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ㅎㅎㅎ 나이 드신 부모님이랑 하는 여행은 절대 내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다. 아쉬워도 내려놓는 게 필요하고, 같이 갔지만 홀로 여행하는 것처럼 다니기도 해야 하는 거다.

저자는 두 분을 다 모시고 떠났으니 떠나기 전부터 엄청난 준비에, 얼마나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며 일정을 짰을지 책을 읽기 전부터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그런 단단한 채비 속에서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전해지는 여행의 에피소드들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세 식구가 서로의 감정과 상황, 그리고 삶을 더 애틋하게 감싸 안으며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대화들이었다. 저자가 너무 아프게 후회한다는, 엄마의 힘든 삶에 대한 토로를 있는 그대로 품지 못했던 밤의 술자리, 여권을 잃어버린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터져버린 눈물, 타파스 투어에서 술 취해 털어놓은 실연의 고백에 대한 의외의 쿨한 시선 등 여행을 통해 서로 더 변화하고 맞춰가는 가족의 모습이 계속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만 어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고. 그 과정 속에서 무기력해져가는 아빠와, 점점 어두워지는 나를 보면서 힘듦을 터놓지 못했던 엄마, 그리고 정작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히다 그라나다 교차로에서 완전히 녹아내린 나. 정말로 내가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터놓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힘듦을 말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데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소질이 없는 딸이었다.


- 『걸어서 환장 속으로』 中 p.218

 

터놓는 것과 힘듦을 말하는 것, 역시나 저자처럼 두 가지 모두에 소질 없는 딸인 나는 저자가 울던 그 순간 같이 눈물이 나서 혼났다. 어떤 마음일지 너무 잘 이해가 되어서... 인생을 긴 여행이라고 본다면,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생기는 사건, 사고로 인한 모든 짐을 내가 질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말하지 못한다. 이건 용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최근 들어서 계속 생각한다. 아마 어느 정도 그 연습이 되어야 엄마랑 스페인으로 떠날 엄두가 날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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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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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딩에 참여해서 받게 된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 젊은 작가 중에 핫한 편에 속하는 정세랑 작가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참여했는데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구나 싶었다. ^^;;

 

 

둘째 재욱이 타국의 사막으로 파견 근무를 떠나기 전 다 같이 휴가를 보낸 삼 남매는 돌아오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묘하게 형광색을 띤 바지락칼국수를 먹게 된다. 휴가 후 첫째 재인과 재욱은 각자의 일터인 대전과 아랍으로 떠나고, 고등학생인 재훈은 어머니와 집에 남는데... 업다운이 심한 어머니는 재훈의 뒷바라지를 할 에너지가 없었고, 결국 일방적으로 신청당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재훈도 미국의 농장으로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 재훈은 자신에게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소한 새로운 능력이 생겼음을 알아차린다. 재인과 재욱도 미묘한 신체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에 딱 맞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작다면 작은 초능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구원의 드라마로 나아간다.

가장 갖고 싶은 초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리고 갖고 싶은 능력치와 이유, 그 능력을 가지면 하고 싶은 일은 사람마다 엄청나게 다양할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과 그 초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생각할 때 참 제한된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 뭐 딱히 그게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뭔가 좀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럽게 다른 능력이 생긴 삼 남매는 거한 꿈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자기 주변을 좀 더 살피고 티 나지 않는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결국은 누군가를 구함과 동시에 자신들도 구원받는다. 그리고 더 큰 모험, 긴 여정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 이상하게 아쉬웠다. 무기를 가지고 있는 기분,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의지는 재인에게 활력이 되었던 것이다. 재인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여자아이가 대부분의 이야기에서처럼 누군가에게 구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구하는 이야기.


- 『재인, 재욱, 재훈』 中 p. 1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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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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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오랜 세월 다른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언어체계 등을 쌓아온 두 가족이 만나 대환장의 아비규환을 연출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안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다.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에는 얼핏 완벽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한 두 여자가 등장한다. 1956년의 넬리와 2018년의 앨리스. 60년이 넘는 시간차를 두고 두 사람은 같은 저택에 살게 되는데 앨리스가 지하실에서 오래된 넬리의 물건들을 발견하면서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묘하게 겹쳐진다.

 

"앨리스, 사랑 말고도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아주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사랑에 빠져도 결혼은 안 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는 - 양쪽 모두 - 섣불리 결혼하면 안 되는 거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산소보다 더 중요한 존재여야 해. 그렇지 않다면 매년 결혼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숨 막힐 거 같은 기분일 거야."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中 p.283

 

 

넬리는 엄마가 자살한 후에 혼자 남겨졌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부유하고 매너 좋은 리처드를 만나 결혼했고, 행복할 줄 알았다. 리처드가 한 번씩 별거 아닌 일로 화를 이기지 못할 때 멍이 들 정도로 자기를 학대하며 그 탓에 유산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정원 가꾸기부터 요리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동네에서 평판도 좋은 나무랄 데 없는 충실한 아내를 두고도 리처드는 다른 여자의 립스틱 자국에, 향수 냄새까지 감추지 않는 정말 가지가지 하는 못된 남자였다. 앨리스는 아버지가 떠난 후 딸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한 엄마 밑에서 외롭게 성장한다. 조깅하던 중에 만난 유능하고 완벽해 보이는 네이트와 결혼에 이른 앨리스는 사랑하던 일을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네이트가 늘 원하던 교외의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까지 하게 된다. 좀처럼 집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녀는 그 집에서 넬리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요리책과 역시 넬리가 어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발견하면서 넬리와 그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데...

넬리와 앨리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이다. 넬리의 이야기 앞에는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레시피가 붙어 있다. 행복한 이야기라면 그 레시피도 음미하며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리처드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과 넬리가 빨리 리처드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 사실 레시피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제목 자체가 살짝 스포라 읽다 보면 넬리가 리처드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데 그럼에도 넬리를 탓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러다 넬리가 리처드에게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지점도 있어서 두 사람의 결말에 나는 넬리보다 더 안도했던 거 같다.

드러내놓고 나쁜 놈인 리처드와 앨리스의 남편 네이트는 좀 다르다. 네이트는 앨리스를 학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야기 속에서 살짝 외도와 기만의 냄새가 풍길 뿐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학대의 범위 안에 앨리스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만 밀어붙이는 것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앨리스와 네이트의 이야기는 부부 솔루션보다는 앨리스의 성장담에 가깝다. 자신이 그토록 열정과 열의를 불태우던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조차도 눈치를 보느라 네이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앨리스는 넬리의 유산(?)을 발견하고 그녀의 레시피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그리고 교외로의 이사도 좋을 대로 결정했던 네이트가 캘리포니아로의 이주까지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자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데...

앨리스의 변화와 성장에는 넬리뿐 아니라 옆집의 샐리도 한몫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말씀을 최고의 선물이라며 앨리스에게 준다.

 

"뭐라고 하셨느냐면, 샐리,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란다. 우리가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대신 답을 하려고 난리들을 칠 거야.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中 p.386

 

지금보다 더 불합리한 관습에 얽매여 숨죽여 살아야 했던 어머니가 딸에게 던졌던 시대를 앞서간 이야기는 60년이 지난 조금 더 나은 시대를 산다는 여성에게도 꼭 필요한 질문이었던 거 같다. 살다 보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상황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종종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무엇보다 스스로가 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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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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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힐링 에세이 같았던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무실에 놓아둔 책을 보고 제목만으로 너무 힐링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웃었었다. 근데 이 책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에 대한 강의다. 기본소득은 코로나 시국의 재난지원금과 맞물려 너무 많은 얘기가 나와서 잘 아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공부한 느낌이라 좋았다.

 

정말 열심히 노동하면 누구에게라도 소비능력이 생기는 걸까요? 잠입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는 기자이자 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가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자신이 일한 경험을 담은 『노동의 배신』(200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처지가 악화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 에런라이크는 음식점 종업원, 청소부, 월마트 점원으로 직접 일하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지더라는 겁니다. 시간당 7달러 조금 넘는 금액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더라는 거죠. 실제 경험을 통해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되는 현재의 소비사회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과 충분한 소득이 생긴다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죠.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31

 

 

우리는 모두 열심히 일하는 걸 중요하게 배우면서 성장했다. 열심히 벌어서 잘 쓰고, 잘 저축하고 뭐 이렇게 해서 인생의 다음 계획을 세우고... 대부분 그렇게 하라고 배우면서 자라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달라진 사회 속에서 과연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게 가치가 있고, 그게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인지부터 언급하며 문제 제기에 들어간다.

고용이나 일자리 상황이 계속 악화일로인 것은 일을 하고 있는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 예산을 쏟아붓고, 창업을 독려하고, 고용을 보조해도, 일시적일 뿐이다. 앞으로 점점 발전이라고 추구되는 것들 안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노동이 최소화되고, 우리가 쓸모없는 존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걸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이건 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일에 대한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의 시작도 바로 여기, 마땅한, 제대로 된 일자리라는 게 정말 너무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직접 점점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처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외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이 일을 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든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그런 건 각자도생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 여기에서 저자는 먼저 '모든 시민의 총소득을 늘리는 사회적 배당금'으로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세계 각지에서 실험 중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배경이 되는 이론들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해서 정치적인 쇼로만 느껴졌던 기본소득이라는 게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실현 가능할 수 있을지 이해가 되었다.

 

정리해본다면 자본은 시장에서 직접적인 수요가 많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선택해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로서는 자본과 소비를 만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모두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설령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고 해도 결국 이 돈이 시장에서 계속 소비에 쓰인다면 다시 자본의 주머니 속으로 돈이 돌아가는 구조라 자본도 그다지 잃을 게 없는 제도일 수 있다는 거죠.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149~150

 

저자가 두 번째로 다루는 '모두를 위한 사회적 상속'이라는 기초자본은 개인적으로는 아예 처음 듣는 단어 같았으나 책을 읽다 보니 완전히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출발선이라는 게 아예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그 불평등한 출발선을 어느 정도 맞춰 보자는 건데 이 역시 배경이 되는 이론이나 주장, 그리고 다양한 나라들과 우리나라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책적인 형태를 살펴보고 역시나 어떻게 진행 가능한 지까지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기초자본의 목표는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매달 소비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연령에 이른 구성원들에게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 소위 종잣돈을 지급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18세, 21세 등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성년이 되어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2,000만 원이든 3,000만 원이든 목돈을 한꺼번에 주자는 겁니다. 기초자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목돈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174~175

 

이건 어디까지는 저자의 이야기이고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또 어떤 허점이 발견되어 악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실행되고 있는 각종 제도 중에서 일말의 구멍도 없는 완벽한 것은 없다. 학교에서 급식비나 학비 지원 서류를 쓰면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자주 봤으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기본소득'이나 '기초자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서 실질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게 현명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슬픈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모두 점점 쓸모 없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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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워커스 -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 그룹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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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인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구입했다.

 

앞으로도 일에 대해 뾰족한 정의는 내릴 수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일의 모양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책에서 우리의 생각이 이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애씀의 기록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애쓸수록 마주하게 되는 건 드높은 현실의 벽과 훨씬 큰 불안함으로 둘러싸인 삶이었지만, 이상을 좇는 모험은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 『프리워커스』 中 p.45

 

 

저자인 모빌스는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한다.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도 가지고 있고, 여러 회사들과 다양한 협업도 진행하며, 일하는 과정을 '모티비'라는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다. 책에는 모빌스의 멤버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일했던 시기부터 퇴사하여 모빌스를 시작하고 진행했던 다양한 협업과 프로젝트의 경험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빈틈을 보여주기 전에는 빈틈으로 물이 샐 거라고만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괜한 걱정일 뿐이었던 것 같다. 빈틈을 통해서 바람도 솔솔 통하고 빛도 들어왔다. 이제는 캄캄한 어둠이 두렵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자.


- 『프리워커스』 中 p.154

 

'솔직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브랜드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딜레마와 고민에 공감하면서 읽다 보니 문득 일하면서 '진심은 통한다'라는 걸 실감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오히려 마음을 감추는 데 능숙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분명 진심과 솔직함이 통한다는 걸 체감했던 기억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고, 매일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걸 알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솔직하게 진심을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협업을 돌아보며 모든 게 잘 마무리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으로, '느슨한 연대'라는 달콤한 말 뒤에 따라오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슨한 연대라는 말은 아이러니였다. 느슨해서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계약과 같은 형식만 느슨했을 뿐이지 일에 있어선 훨씬 강한 유대가 필요했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도 분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강한 신뢰가 요구됐다. 결론적으로 전부 느슨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프리워커스』 中 p.164~165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나는 작년 '전주사회혁신한마당'에서 모 작가의 강연을 들으면서 처음 접했다. 그때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는데 사실 일에 있어서 '느슨한 연대'라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느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에 모 단체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가 매일 회의라고 모이면 일 얘기는 안 하고 연대 어쩌고만 해서 되는 일이 없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신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오는 회의라 재미있기는 했다고... 해야 되는, 완료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일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들을 꼼꼼하고 끈끈하게 점검하고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과 같이 속도를 높여 진행해야 되는 부분을 잘 구분해서 느슨하게 갈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오래 고민해 온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할 수도 있다는 예시의 가감 없는 기록으로 의미가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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