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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평점 :
결혼은 오랜 세월 다른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언어체계 등을 쌓아온 두 가족이 만나 대환장의 아비규환을 연출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안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다.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에는 얼핏 완벽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한 두 여자가 등장한다. 1956년의 넬리와 2018년의 앨리스. 60년이 넘는 시간차를 두고 두 사람은 같은 저택에 살게 되는데 앨리스가 지하실에서 오래된 넬리의 물건들을 발견하면서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묘하게 겹쳐진다.
"앨리스, 사랑 말고도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아주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사랑에 빠져도 결혼은 안 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는 - 양쪽 모두 - 섣불리 결혼하면 안 되는 거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산소보다 더 중요한 존재여야 해. 그렇지 않다면 매년 결혼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숨 막힐 거 같은 기분일 거야."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中 p.283

넬리는 엄마가 자살한 후에 혼자 남겨졌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부유하고 매너 좋은 리처드를 만나 결혼했고, 행복할 줄 알았다. 리처드가 한 번씩 별거 아닌 일로 화를 이기지 못할 때 멍이 들 정도로 자기를 학대하며 그 탓에 유산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정원 가꾸기부터 요리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동네에서 평판도 좋은 나무랄 데 없는 충실한 아내를 두고도 리처드는 다른 여자의 립스틱 자국에, 향수 냄새까지 감추지 않는 정말 가지가지 하는 못된 남자였다. 앨리스는 아버지가 떠난 후 딸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한 엄마 밑에서 외롭게 성장한다. 조깅하던 중에 만난 유능하고 완벽해 보이는 네이트와 결혼에 이른 앨리스는 사랑하던 일을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네이트가 늘 원하던 교외의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까지 하게 된다. 좀처럼 집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녀는 그 집에서 넬리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요리책과 역시 넬리가 어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발견하면서 넬리와 그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데...
넬리와 앨리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이다. 넬리의 이야기 앞에는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레시피가 붙어 있다. 행복한 이야기라면 그 레시피도 음미하며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리처드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과 넬리가 빨리 리처드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 사실 레시피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제목 자체가 살짝 스포라 읽다 보면 넬리가 리처드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데 그럼에도 넬리를 탓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러다 넬리가 리처드에게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지점도 있어서 두 사람의 결말에 나는 넬리보다 더 안도했던 거 같다.
드러내놓고 나쁜 놈인 리처드와 앨리스의 남편 네이트는 좀 다르다. 네이트는 앨리스를 학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야기 속에서 살짝 외도와 기만의 냄새가 풍길 뿐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학대의 범위 안에 앨리스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만 밀어붙이는 것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앨리스와 네이트의 이야기는 부부 솔루션보다는 앨리스의 성장담에 가깝다. 자신이 그토록 열정과 열의를 불태우던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조차도 눈치를 보느라 네이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앨리스는 넬리의 유산(?)을 발견하고 그녀의 레시피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그리고 교외로의 이사도 좋을 대로 결정했던 네이트가 캘리포니아로의 이주까지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자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데...
앨리스의 변화와 성장에는 넬리뿐 아니라 옆집의 샐리도 한몫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말씀을 최고의 선물이라며 앨리스에게 준다.
"뭐라고 하셨느냐면, 샐리,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란다. 우리가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대신 답을 하려고 난리들을 칠 거야.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中 p.386
지금보다 더 불합리한 관습에 얽매여 숨죽여 살아야 했던 어머니가 딸에게 던졌던 시대를 앞서간 이야기는 60년이 지난 조금 더 나은 시대를 산다는 여성에게도 꼭 필요한 질문이었던 거 같다. 살다 보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상황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종종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무엇보다 스스로가 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