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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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생각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려달라고 한적이 있다.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과 인상을 갖고 있다는게 내심 놀라웠다. 내가 그랬단 말이지 하며 흥미롭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언제? 하는 의문이 생길만큼 의외의 대답이 있기도 했다. 그들이 본 다양한 내가 모두 나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남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틈이나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종이에 쓰기도 한다. 계속 고민하고 질문하며 고쳐나가지만 재미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바쁘다.

  그런점에서 보면 이 책의 주인공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길이 확고한 사람이다. 밝고 아름다운것을 좋아했고 그런 꿈을 꾸었다. 스스로가 고귀하고 빛나는 보석같기를 희망했다. 이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자기를 둘러싼 모든것이 다 그렇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녀가 태어난 시기 일본은 전쟁의 패전으로 주저앉은 때였다. 또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바쁘고 가난하고 부족함이 흔한 시기였다. 기미코는 채소를 팔던 집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어머니는 절도전과가 있었다. 얼굴이 예쁘고 머리가 좋아 어떻게 저런 아이가 태어났냐며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의 자랑거리였지만 그녀는 결코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영특하다고 해야할까 영악하다고 해야할까. 고운 외모와 반듯한 품행으로 좋은 평을 받는 기미코는 일찍부터 상황판단을 끝내고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첫단계는 자기의 혈통 고치기이다. 못난 부모와 보잘것 없는 집안 대신 가상의 귀족집안을 그려내고 주변에는 자신이 업둥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초등학생일때부터 은밀하고도 철저하게 자신은 업둥이라고, 현재의 부모는 양부모라고 흘린다. 아주 어릴때 본 기억이 확실히 난다며 용담문양을 언급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생긴것에서부터 말투, 행동 어느것하나 부모와 닮지않은 스즈키 가족을 보고 기미코의 말을 쉽게 납득하고 만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몰락한 어느 귀족집안의 태생 아가씨로 이미지 각인을 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남들의 눈에 보석처럼,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는듯 보이도록 행동한다. 기미코는 이후 죽을때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그리는 이상에 맞지 않는것은 인정하지 않고 기어이 원하는대로 만들어버린다. 채소가게 딸 스즈키 기미코가 옛날 귀족 성씨를 흉내낸듯한 묘한 성씨의 도미노코지 기미코가 된것은 너무도 그녀다운 일이다.

  막대한 부를 쌓은 사업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살다가 7층에서 추락해 죽은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그녀와 관련한 사람들의 기억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남았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들의 기억에 있는 기미코는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고 거친 말을 써가며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절대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의 의지에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그건 고귀하고 찬란한 보석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와도 큰소리를 내지않고 대화하지만 원하지 않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주도권을 잡아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를 만들고 목적달성이 안되면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뜻대로 행동한다. 피해당할 마음은 없으나 싸움만큼은 피한다.

  기미코의 이런 특성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뒤통수 맞았다는 말이 나오게도 만든다. 보석으로서의 기미코를 만난 사람들은 그녀의 반짝거림을 만끽했지만 보석이 되기위해 혹은 보석인채로 계속 살아가기 위한 기미코를 만난 사람들은 상처받고 피해를 입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인터뷰라서 모두 자기의 세상에 들어온 기미코를 이야기했지만 기미코의 세상을 똑바로 들여다본 사람은 그녀의 둘째 아들 요시테루를 제외하곤 없었던것 같다. 그녀가 죽은 후 기사에서는 악녀라는 이름아래 싸잡아서 과거를 털어내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은 흥분해서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 모두가 결국은 누구누구의 기미코이지 기미코라는 그 사람이 아닌것이다. 스스로도 자기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 본인이 죽어버린 세상에 그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작가는 무려 27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내세워 그 허무함을 드러낸다.

  거기에 더해 책을 읽은 나를 28번째 사람으로 세운다면, 글쎄. 기미코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라고 하고싶다. 굳이 말해야한다면. 예민하고 감성적이며 이상이 높은만큼 현실의 차이에 많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꿈을 쫓아 달리고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미코의 옆에 사람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기안에 누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것이 이상적인 세계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는 재료이다. 빛나는 기미코의 세상에선 여왕으로 우뚝 선 그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타인과의 교류나 조화가 없는 인생이 쓸쓸하고 헛헛하지 않으면 이상한거다. 이것도 그녀 자신의 선택이니 뭐라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편향적인것이라 27개의 인터뷰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을 인식한다면 기미코가 생전에 누구였는지를 밝히는 일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 때문에 나도 주인공에 대해 단정짓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그저 내 가치관의 기준으로 본 기미코가 이기주의 최강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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