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리스트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은이 로이 넬슨 스필먼의 첫작품 <라이프 리스트>는 영화로도 제작이 결정됐을만큼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처음에 엄마의 유언에 따라 열네살에 적었던 라이프 리스트를 완수하는 내용이라고 들었을때 동화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죽음을 앞두고 작성한 리스트가 아니라 한창 꿈많고 순수했던 소녀시절 작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열네살에 뭘했던가 생각을 했었다.

 

  생각보다 두툼한 책을 펼쳐보니 처음부터 장례를 치루고 엄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젖어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암선고를 받은 후 줄곧 옆을 지키며 엄마의 간호를 해왔던 브렛은 조문객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의 침대에서 엄마냄새를 맡으며 추억을 떠올리고있다. 옷장에서 완치 후 마시기로 한 샴페인을 마시고 취한 그녀는 결국 조문객들 앞에서 넘어지는 실수까지 저지른다. 깨어난 후 창피함을 느낀 브렛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엄마가 남긴 회사를 이어받아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운 경영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오빠들 부부와 함께 변호사를 만난다. 하지만 변호사의 입에서는 회사를 새언니에게 맡긴다는 유언장의 내용이 나오고 더불어 자신에게만 아무런 유산상속이 없음을 듣게된다.

 

  두 오빠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놀고 먹을 수 있는 재산을 받았고 큰오빠 조드의 아내 캐서린은 이제 엄마의 회사를 물려받았다. 둘째 오빠네도 역시 많은 상속을 받아 그의 아내이자 친구였던 샬롯은 일을 그만두고 주부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회사도 유산도 남지 않았다. 변호사는 브렛에게 따로 할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엄마가 따로 남긴 유언으로 브렛이 열네살에 작성한 라이프 리스트를 내밀며 아직 이루지 못한 열가지를 일년안에 이루라는 내용이었다. 각 항목을 이루면 그에 해당하는 편지를 변호사 브래드가 읽어준다. 일년 안에 모두 이루면 유산을 받을것이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한 유산과, 서른 넷의 여성이 된 현재의 브렛은 받아들일 수 없는 라이프 리스트. 돌아가신 엄마는 작정하고 자신의 삶을 부수려는 사람같다.

 

  그 열가지 라이프 리스트는 솔직히 내가 봐도 좀 당황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일년 만에 이루기에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한명 이상 갖는게 너무 큰일임은 사실이다. 개를 키우는것은 둘째치고 말을 키우는건 너무했다. 상처받아 트라우마가 된 교사일을 안정된 가족회사의 홍보실장에서 해고하면서까지 하라고 하는건 강요같아 브렛이 안쓰러웠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는 리스트는 내게도 끔찍해서 무대에서 벌벌 떨었던 그녀가 정말 불쌍했다. 무엇보다 안됐던건 그녀가 너무도 사랑하는 연인 앤드루는 사회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부유함만을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아빠에게서 받지못한 사랑과 상처받은 마음을 아직도 곱씹고 있다는게 답답했다.

 

  브렛의 엄마 엘리자베스는 딸을 무척 사랑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딸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길 원했다. 친절하고 정이 많으며 이상주의자였던 본래의 그녀모습을 잃지 않고 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회사에서도 해고하고 금전적으로도 힘들어질것을 알면서도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브렛이 마지못해 라이프 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좌절할때마다 나도 모르게 같이 눈물이 나고 엄마를 탓하는 마음을 이해했지만 독자로서 함께 편지의 내용을 들었기때문에 조금만 더 참고 라이프 리스트를 완수해봤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이 내또래의 여성이기때문인지 나는 읽으면서 처지가 많이 다른데도 자꾸 감정을 이입하게 됐다. 그리고 조금씩 변해가는 브렛의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도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는 처음부터 죽은사람이었지만 브렛의 회상속에서 항상 현명하고 섬세하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나도 저런 여자로 나이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딸에게 남긴 편지들중에 사랑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해서는 안된다는것, 계속 네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향해 밀고 나가보라고 했던 구절이 내 머리속에서도 맴돌았다.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냐, 춤을 출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네가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중에서 -  

 

  나라면 안정된 자리와 금전적인 여유를 미뤄두고 세상에 나가서 부딪히고 뒹굴고 다쳐보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너의 세상을 넓혀보라고 자식에게 말할 수 있을까. 죽어서 더이상 지켜볼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과감히 이런 결정을 내린 점에서 나는 깊은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은 참 따뜻하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꼭 보고싶다. 행복한 영화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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