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모르게 생긴 작은 편견으로 처음엔 이 책을 거들떠도 안봤다. 주변에서 이 책을 눈물흘려가며 보았다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관심밖으로 밀어두었을 것이다. 생각외의 반응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괜찮다고 한번 보라고 하기에 서점에서 급히 찾아보게 됐다.  

  조금 읽어보니 마치 전래동화같았다. 호랑이가 등장해서 그런걸까. 아무튼 문체도 동화마냥 따뜻했고 글의 내용도 그랬다. 옛날이야기같은 이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시작은 흡족했다. 그래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귀신이 나와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원래 호랑이와 친근하게 살아가던 호랑이마을 사람들은 임금님의 호랑이 사냥이 있은 후로 호랑이를 무서워하게 됐다. 더이상 예전처럼 서로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게 됐고 담을 높이 올려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에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찾아와 백호를 잡겠다고 한다. 호랑이를 잡으러 간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말리지만 그들의 뜻은 완강하다. 아내와 딸을 잡아간 백호를 잡지 못하면 대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무섭게 만드는 육발이라는 호랑이라도 잡겠다고 한다. 결국 황포수 부자는 그 마을에 머물게 되고 촌장의 손녀 순이와 고아인 딸국이, 용이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마을에도 일본군이 오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고 쉽게 빠져들어 눈을 떼기 힘들었다. 이 책이 약 10년에 걸쳐 쓰였다는 것을 보고 너무 쉽게 빨리 읽어버리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늘에 있는 엄마별에 의지하는 순이는 엄마별을 찾지 못하는 용이에게 백호를 용서하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용서하고 네 마음이 편해지면 보일 것이라고. 용서를 빌지도 않은 백호를 어떻게 용서하냐는 용이의 말에 대답하는 순이의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아직도 껄끄러운 우리와 일본의 역사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따뜻한 이야기, 따뜻한 문체, 생각할수록 슬픈 역사가 정성껏 버무려진 소설이었다. 중간 중간 '나 제비 맞아?' 와 같은 말을 내뱉는 제비가 있어 웃으면서 기분전환을 하기도 했다. 글도 좋았고 그 안에 담긴 어른스럽고 성숙한 생각이 좋아 이 책에 가졌던 편견에도 읽어볼 수 있게 된게 지금은 그저 다행스럽다. 따뜻한 봄날에 읽으면 참 좋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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