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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이경자 지음 / 문이당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전체적으로 진흙이 생각나는 색감이다. 그것도 붉은색의 황토흙이 아니라 회색이다. 대놓고 말하면 정말 칙칙했다.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이 있는 그림이 표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림도 여분의 표지도 모두 그랬다. 여인들은 흰색, 살구색, 노란색, 연한 하늘색의 상의를 입고있는데도 제 빛을 내지 못했다. 여인들은 하나같이 검게 탄 얼굴과 팔 다리를 하고있었다. 그리 즐거워보이지도 않고 개울도 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서럽거나 슬프게 보이는 것 역시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그려낸듯 했다. 처음 보았을때나 몇번을 보았을때나 한결같은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박수근의 빨래터인듯 했다.
난 그림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고 화가들은 더더욱 모른다. 그래서 박수근이라는 화가가 있는줄도, 어디선가 스치듯이라도 이 빨래터라는 그림을 본적도 없었다. 이 소설을 접하면서 그 존재를 겨우 알았다. 이 빨래터라는 작품이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격에 낙찰되었다고 하고 그 화가에 대해 쓴다고 하니 당연히 그림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조금은 긴장을 했지만 그림자체보다 화가이자 인간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었다.
최고 가격으로 낙찰된 빨래터를 그린 화가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이 이른 아침 위작논란 소식을 전해주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품이 위작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을 찾아 급히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회상을 한다. 그렇게 독자는 기억속에서 되살아난 박수근을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그림을 위해 평생을 다 바쳤던 사람, 가난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언제나 고심하고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던 사람, 그래서 가족에게 가난한 삶을 살게 해 항상 미안해하던 사람 박수근이다.
박수근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아는것이 없는 상태에서 소설을 먼저 읽으니 자꾸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이 위인전기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착각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나니 뭔가 허무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렇게 읽어도 결국 내가 알게 된 것은 최고 낙찰 가격인 빨래터와 위작논란이 있었다는것, 그것을 그린 화가가 박수근이라는 것밖에는 아는게 없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그림들이 하나같이 누구나 겪는 일상이라는 것을 보면 그는 오늘을 살아내는 것을 즐거워하고 감사해하는 사람인것 같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그리니 말이다. 그렇다면 소설이 그려낸 화가 박수근을 어느정도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림처럼 담담하고 소박한 멋이 있는 사람 박수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