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중학생이었을때, 아버지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학교 도서관에도 그 책이 있어 나 역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슬픔을 느낀 기억이 났다. 이제 아버지라는 책의 작가가 또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책을 쓴 작가도, 그리고 작품을 읽은 독자도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미처 몰랐던것을 깨닫고, 지금도 인생이라는 것 아래 펼쳐지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더욱 진중하게 다가왔다. 물론, 베스트셀러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본다. 

  욕망에 휘둘려 세상 밖에서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고요히 초야에 묻혀 사람의 도리를 다한 진정한 선비를 일러 우리는 처사라 한다. 달성 서씨 문중의 후손으로 세상에 나와 스스로 끓어오르려는 욕망을 다스리며 자식과 남편과 아비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벗과 이웃에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해 그 귀감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내 친구 서용준. 선비가 사라져 가는 우리들 세대의 세상에 용준은 진정한 선비였으니 그에게 처사의 명은 실로 합당한 것이다. p.272 

  우선, 책의 말미에 보이는대로 이 책은 작가의 친구 이야기이다. 친구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제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아들로,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함께 느끼는 것이 다음일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다 따위의 주장같은 것은 하려는 말이 아닌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 책을 그냥 물 흐르듯 읽어 넘기면서 같이 공감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누구에겐 이제 막 태어난 자신의 갓난쟁이를 생각하며 함께하기도 할 것이다. 그냥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똑부러진 목표도 없이 인생이 뭐 별것이냐 심드렁하게 여기면서 적당히 대학에 가고 이마저도 도망치듯 피해 군대를 가버린 용준은 제대하고 난 후 쓰러져 꼼짝도 못하고 누워계신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한다.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몸을 씻긴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기울어져가는 아버지의 예식장에서 누이들의 결혼식을 치루고 그의 손때가 묻은 카메라를 이용해 허름한 사진관을 차리는데 그 가게가 바로 고향사진관이다. 언제든 일어나실 것이라는 희망 반, 병원에서 들은 문자 그대로 여기는 체념 반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건물을 지키며 눌러앉은 용준은 친구들 사이에선 인생이 망해버린 사람이다. 깨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신만의 인생도 잠재우고 그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하고 지냈다. 그렇게 결혼도 해버린 용준이었다.  

  그의 파삭파삭한 생활에 내 목이 다 말라가는 기분이 든다. 덩달아서 내뱉지 못한 무언가가 묵직하게 가라앉는것만 같다. 술을 습관적으로 찾는 사람, 술에 자만하는 사람, 주사있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용준에겐 한 잔 가득 술을 채워주고 싶기도 했다. 흘러가듯 끌려가듯 지나가는 용준의 삶에서 결혼으로 지켜야 할 아내가 생기고 자신을 닮은 아기는 무척 소중한 존재였다. 아들이었던 용준이 이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처음 느끼는 책임의 무게였다. 그리고 알게 된다. 아무것도 못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지키는게 아니라, 아직도 아버지가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임을. 

  허수아비인듯, 주인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꼭두각시인듯 무능력하고 짜증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실은 누구나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몫이 있다. 문제는 그것을 아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용준이 실제 인물이었고,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 어른임을 생각하면 태어난 딸을 보며 이를 깨달은 것이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진심이다. 눈썹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아버지이지만 마지못한듯 살다가 보내고 나서 깨닫는 것은 더욱 슬픈일이다. 누워계신 아버지이지만 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버석버석한 느낌이 덜해졌다. 

  개인의 꿈을 위한 삶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삶을 선택한 것이 이 책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라고 본다. 살면서 누구나 깨닫게 되는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그에 순응하며 마음을 다지는 과정이 의미있다. 이건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건 시기상의 차이만 있을뿐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용준이 생을 내려놓을때 쏟아낸 눈물 이후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했는지도 모른다. 남겨진 주변 사람에겐 가엾고 미련이 남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아버지를 만나 원없이 안아도 보고 이야기도 하지 않을까.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책이었다. 너무도 달라져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소금물에 절여지는 배추마냥 푹 담궈졌다 나왔다. 축 늘어져 나온것은 말할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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