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기좋고 눈이 시리지 않을 정도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선인장이 표지에 그려져 있다. 마치 한손을 들어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것만 같은 이 선인장은 가시마저도 새싹처럼 앙증맞아 무척 귀엽게 보인다. 눈 코 입 없이도 사람처럼 보이는 선인장에다 책 제목이 왕국이어서 동화는 아닐까 짐작을 해봤다. 상상력이 이정도밖에 안되는구나 싶어 스스로가 안타까우면서도 정말 동화였으면 했다. 적어도 동화속 주인공같은 사람이 한명은 있었으면 하고 기대했다. 무척 빈약했떤 상상력에 머쓱했던 기분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밝아졌다. 시즈쿠시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금은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시즈쿠시이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즐겨 재배한 선인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녀는 할머니의 일을 거들며 차도 못들어오는 산속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할머니에게서 약초에 대해 배우며 자란 시즈쿠시이는 고귀하고 순결한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인물이다. 산기슭에서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산을 내려와 독립된 생활을 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답답한 도시의 이미지가 주인공과 주변의 특별한 사람들, 선인장으로 인해 신선하고 포근하게 바뀌어갔다. 스무살의 아가씨 시즈쿠시이의 맑고 당찬 모습이 읽는 내게도 지나간 나의 스무살을 떠올리게 했다. 가에데의 어시스턴트로 있으면서 그의 매력을 금새 찾아내 있는 그대로 친구처럼 좋아하고, 선인장 공원에서 만난 신이치로에게 반해버리는 풋풋한 모습. 이런 그녀에게 소리없이 힘이 되어주는 가에데. 비록 눈으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신비한 능력으로 기억과 사람을 볼 줄 아는 캐릭터로 그 역시 시즈쿠시이 만큼이나 개성있고 생각이 깊다. 아빠처럼 시즈쿠시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해준다. 이 두사람의 존재가 특별한 사건 없이도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요시모토의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이제 겨우 네번째 작품을 읽는 것이니 바나나의 작품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전에 읽은 책을 기억해보면, 거기엔 한결같이 아픔이나 지나온 날에 대한 후회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함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누군가 잡아주고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 분위기속에 있는게 참 아늑해 좋았다. 1권이어서 내용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지만 이어질 2, 3권이면 충분할 것이다. 바나나가 만들어낸 온전한 왕국이 어서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