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밀리건 -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다니엘 키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황금부엉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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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영화를 본적이 있다. 한 사람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인격들을 보면서 그때는 그래도 영화니까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서로 외모와 나이 지식, 감성, 기호가 모두 다른 타인들이 한사람의 몸안에 공존한다는것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책이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라는 것을 알고 단순히 영화 한편을 보는것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보게 됐다. 저절로 그렇게 됐다. 다중인격이라는 것이 뛰어난 재능의 사람이 꾸며낸 사기극에 지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문지식을 가진사람들이 행한 많은 시도끝에 인정된 것이라면 쉽게 거부하고 돌려버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명확한 원인도 해결책도 모르는 현상이기 때문에 무섭다고 해야할까, 조심스럽다고 해야할까 하는 마음뿐이다.

  심리학이나 정신질환에 관심은 많지만 관심만큼의 지식을 갖고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밀리건 이전에도 다중인격자가 있었다는 책속의 언급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게 없다. 이렇게 모르다보니 오히려 두려움과 관심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 긴장감을 그대로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드문드문 기억이 끊기고 다시 현실을 인식하면 기억하던 때와는 많은 시간의 차이가 생기고 기억이 없으니 아는게 없어 무엇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생긴다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런문제는 가볍게 하는 상상도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자신안에 있는 다른이를 너무도 오래 알아차리지 못했다는것이 더욱 끔찍하다. 자신이 다중인격임을 알고 자살했다는 사람이 있었다고 쓰여있는데 충분히 -자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결코 순탄하지 못한 빌리 밀리건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동정심이 드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사람이 받는 상처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 자신도 모르는 인격이 분열되어 기억에도 없고 원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된 그가 불쌍했다. 그와 동시에, 이런일이 가능하게 하는 우리몸에 대해 놀랍기만 했다. 이것을 신경의 문제인지, 정신의 문제로 해야할지 난 알수가 없지만, 오싹해질만큼 놀랍다는 생각은 한다. 가짜같은 밀리건의 나머지 인격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가치관이나 입장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대로 지키고 있는것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직접 그를 만났다면, 나는 그에게 어떤사람으로 다가갔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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