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뜻 주위를 둘러보니 가게 안에는 나 말고도 예닐곱 명의 손님이 눈에 띈다. (p.9) 그저 지나가는 문장같았는데 바로 이어 예닐곱 명의 손님에 대해 눈에 보이는대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이것으로 이 책의 첫번째 단편은 끝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와 각자의 회사동료, 그들이 각자 데려온 사람까지 모두해서 술자리를 갖고있다. 만남을 주선하는 자리인데 그저 그런 술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에게 하려던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곧 고흐의 흔적을 찾아 아를르에 갈 것이다. 그곳에서 몇달간 지내면서 그림도 배울것이다. 이것으로 두번째 단편은 끝이다. 그래서 뭐?
 
  이렇게 허무함이 사실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하는 말이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허무하다는 것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난 뭘 기대했을까? 문학이라는,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 기대한것이 아닌, 유명한 이름에 비해 한번도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는 작가를 처음 만난다는 사실 자체에 기대하고 있었다는걸 알게됐다. 작가를 잊고 이야기를 봐야 했다.
 
  하나갖이 옆집이나 근처에서 볼 수 있을듯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들만큼 나도 그냥 그렇게 살고있다. 곧 나도 그들속에 끼어들어도 좋을만큼 닮은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나도 먼 외국에서 새로운 마음으로의 배움을 꿈꾸고 있다. 마음이 닿는 공부를 하고 먼곳에 간만큼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이것으로 끝이다. 너무도 똑같지 않은가? 누가봐도 꿈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꿈을 꾸기 이전과는 다른것을 내게서 느낀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나와같은 친구에게 끊임없이 말뿐이지만 희망을 권유했다. 원래 날이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대. 잘될거야. 믿자. 넌 잘될거야. 내가 믿어. 우리 둘 다 잘 되자. 이런말을 인사삼아 틈틈히 쓰곤했다. 그리고 친구는 얼마전 자리를 잡았다. 오늘 나는 다른친구에게 편지로 또 같은말을 썼다. 이렇게 오늘 했던 일을 기억해내고 보니 나는 책 속에 들어가도 좋을 한 개인이 되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지만 오늘이 아닌 이후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조심스럽게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 단편집을 통해서 나는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희망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 전체의 희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희망을!(p. 171 작가후기에서.)
  작가가 말하는, 보여주고 싶었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거야!'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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