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
임복남 지음, 민영숙 그림 / 작은씨앗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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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오해했던 두가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몰랐던 것이 하나이고 잘못 알고있었던 것이 하나이다. 몰랐던 것은, 이 책이 어린이대상 도서라는 것이다. 어쩐지...... 글씨가 참 큼직큼직하다 했다. 내가 초등학교 1~2 학년때 보던 위인전보다 글씨크기가 더욱 크다. 그림과 사진도 곁들어져 더욱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 어른의 나이인 내게도 오히려 이점이 좋았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이 책의 주인공인 권기옥씨가 영화 청연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영화도 보진 못했지만 그 영화속 주인공은 일본에서 무척 고생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읽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뒤늦게야 다른 인물임을 알았다. 책에 대해 사전준비가 전혀 안돼면 이런 일이 생긴다는것을 다시한번 상기했다.
 
 인물서적이기 때문에 작가보다도 인물의 연대기에 우선 눈이 갔다. 내가 7살때 돌아가셨으니 정말 우리 친할머니의 연배이신 분이다. 단지 그 사실로,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라는 이유로 이웃어른의 이야기를 읽는듯한 친근함을 가질 수 있었다. 사투리가 무척 낯설었지만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 친근함 덕분에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왜 이런분이 있다는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먼듯 가까운듯 그렇게 권기옥 이라는 인물에 대해 읽었다.
 
 인터넷 뉴스에 14살 소녀가 최초 경비행기 조종 자격을 취득했다고 실렸다. 소녀가 비행기를 타게된 계기와 그간의 과정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조종석에 단정히 앉아있는 사진이 있었다. 단순한 취미였다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소녀는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싶어 비행기를 타게됐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했고 좋아하게 됐다고, 더욱 노력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조종사가 되고싶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난 후인 내게 어쩌면 권기옥 할머니께서 저 소녀로 환생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비행기를 타는것을 무척 열망하고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권기옥 할머니도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자 알아주는 비행사였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한참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던 권기옥. 그녀는 집안의 가난에도, 여성차별에도, 식민국의 국민이라는 조건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예쁘고 귀하게 여기는 자식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주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하지만 죽으라는 뜻의 갈례는 너무 심했다. 자식더러 죽으라니 무슨 말이 그런가. 나같았으면 어린마음에 무척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달리 권기옥은 놀려대는 동네 남자아이들을 쫓아가 때려가며 본명을 꿋꿋이 밝히는 장부같은 아이였다. 도박으로 재산을 날린 아버지와 몸이 약해 드러누운 어머니 아래서 집안일을 돌보고 막내동생을 맡아 키우다시피 하면서도 아이를 업고 서서 수업을 받아가며 공부하고 중국으로 가선, 남자학교에 입학해 동등한 교육과 훈련을 모두 견뎌내고 이겨내가며 악착같이 공부했다. 독립운동의 혐의로 몇번을 잡히고 고문도 받고 옥살이를 하면서도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달려들겠다며 나라를 위해 항상 달려온 인생을 살아왔다. 눈으로 따라갔던 내가 도리어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파일럿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노력해왔기 때문에 존경하는건 아니다. 물론 훌륭하지만 이 결과물보다 내 마음을 더욱 끌어당기는게 있었다. 그건 열정이다. 꿈을 갖고 그를 위해 앞뒤 잴것 없이 죽어라고 노력하게 하는 그 열정이다. 원래 완벽주의 성격이던 나는 무슨 일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한치의 빈틈없이 해내기 위해 재고 또재고 또 재가면서도 고민을 한다. 그래서 시도도 못해본 것이 참 많다. 이런 날 위해서인지, 마치 눈앞에서 내게 들으라는듯, 내 눈을 보고 직접 말하는듯한 구절이 있었다.
" 꿈을 가지라우! 꿈이 없으면 송장이나 다를 게 없디 않가서! 특히 젊은이들은 꿈이 있어야 돼! 내 지금 열댓 살이라먼 말이야, 우주비행사를 꿈꾸갔어. 우주여행을 하고 싶단 말이디. 미국 아해들이 달에 갔다 왔다는데 우리라고 와 못 가갔어. 갸들은 밥을 다섯 끼를 먹니 열 끼를 먹니. 다를 거 없어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우. 못 할 게 뭐가 있어. 저지르고 보는 기야. 댐벼 들고 보는 기야. 안된다, 못한다, 기딴 생각은 짚어 치우라우. 아이 되면 별 수 없이 어카갔어. 길티만 말이디, 해보지도 않고 아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말이야. 어느나라든 젊은이들이 꿈이 있고 패기가 있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있어. 다른 나라가 함부로 넘보디도 못하고 말이디."
 만나기는 커녕 목소리조차 들어본적도 없는데 옆에서 들리는 소리같았다.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른다. 뒷표지를 보니 이 말이 권기옥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내용이란다. 이런 분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리고 좀 더 오래 살아계셨다면 찾아가 뵙고싶은데 아쉬웠다. 말만 들어도 이렇게 힘이 꿈틀꿈틀 오르는것 같은데 찾아 뵙고 함께 할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것이 열정의 힘인가보다. 비록 내가 7살때 돌아가신 분이지만, 이 책을 고이 간직하면서 권기옥 할머니의 열정을 전해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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