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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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난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전의 우리집을 그릴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그런일이 없었다면 지금쯤은... 이란 상상을 자주 하고는 했다. 누군가를 잃은, 특히 가족이나 가족만큼 마음을 깊이 주고 의지했던 그런 사람을 잃은 그 상실감은 먹먹한 회색같다. 아직 믿기지 않고 믿고싶지 않아 밝지 못하지만 누구든 그 비워진 자리만큼의 상처안에서 살아가는법을 배운다. 혹시 알고 있는가? 회색이 분홍색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을.

 
 그리움이란, 모든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p.49) 이런 생각을 해낸 미쓰코가 대견하다. 나보다는 당당하게 현실을 바라볼수 있었기에 생각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5년간을 눈먼 장님처럼 지내오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나도 그런것같다 라고 여길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모댁에 들어가게 되면서 달라진 현실에서 미쓰코가 깨달은 것이 그리움의 정의이다. 아내를 잃고 점점 없어져가는 일감마저 놓아버린 아빠의 모습을 보는 미쓰코는 아마 더욱 과거가 그리웠을 것이다.
 
 변해버린것, 달라져버린것에 대한 상실감이 전부라면 큰 실망을 했을것이다. 누구도 접근을 안하던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빌딩으로 들어가버린 아빠를 찾은 미쓰코를 따라 가면서 나는 넋놓고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샌가 나도 가족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미쓰코의 언니라고 해두지 뭐. 다른사람을 곁에 두는 아빠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미쓰코가 다시한번 대견하다. 아빠를 제대로 이해할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아빠의 인생과 마음을 헤아려보고 더불어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는 그대로 보고 헤아려보기 시작한다. 이런게 비워진 자리만큼의 상처안에서 배우는 살아가는법이 아닐까?
 
 미쓰코는 미쓰코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회색빛 현실에서 살아간다. 슬픔은, 상처는 이겨내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보는 나도 안타까워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받고말았다.
 
"사람이 왜 유적을 만드는지 알아?" 유리씨는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일거야."
그건 인간이 영원토록 지니는 허망한 바람인거야, 그리고 위에서 보면 목걸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신마저 부러워 매혹당하는 아름다운 빛의 알갱이지, 라고 유리씨는 말했다. (p.86 ~ p.87)
이 인생에서, 나는 나를 위한 유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p.83)
 
이 인생에서, 나를 위한 유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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