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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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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철학이란 이런 것

《야전과 영원》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의 니체'라고 불린다 한다. 니체는 시대의 주류 사상을 뒤엎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낸 망치 철학자이다. 그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열에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사상을 전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니체의 잠언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역시 철학적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내가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라캉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그와 대립점에 있던 푸코, 그들 사이에 위치했던 르장드르를 고루 다룬다. 그는 서문에서 '미셀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 이 세사람의 텍스트를 나름대로 철저하게 읽고 정성스레 재단해 세로실 가로실을 풀어 묵묵히 다시 짜는 작업'을 했다고 발혔다.(16쪽) 책을 직접 읽어보면 이 말의 뜻을 잘 알게 된다. 사사키 아타루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 각각에 대해 치열하게 읽고 해석했다.

 

    단순히 과거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열심히 공부해서 풀어내는데 그쳤다면 저자는 '일본의 니체'라는 평을 듣지 못했을거다. 그는 세 철학자의 사상을 하나씩 풀어내어 촘촘히 다시 엮어냈다. 서로 달라보이는 사상들을 이리저리 자신만의 방법으로 교차시켰다. 읽는 내내 그의 내공과 사유의 힘을 발견하며 놀라워해야 했다. 그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를 넘나드며 막힘없이 자신의 사유를 전개한다. 능수능란하다. 다른 이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듯 거침없이 서술 한다. 사실 푸코도, 라캉도, 르장드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는 많이 버거운 책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개운치 않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또한 어떤 하나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여러 사상을 넘나드는 사사키 아타루의 철학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한다해도 나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일반인이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여러 번 읽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라캉, 푸코, 르장드르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더불어 세 철학자를 넘나들며 '나만의 철학'을 엮어내는 또 다른 철학자의 열정과 사유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겹게 읽어나가며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면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도 든다. 전문가가 이 책에 대해 쓴 리뷰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저자를 유명하게 해준 《잘라라,기도하는 그손을》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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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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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대화

《도덕적 불감증》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이름만 보고 많은 기대와 설렘을 갖고 책을 펼쳤다. 그는 탈근대 사상가인데, '현대 유럽 사상의 최고봉'이라 불린다. 나는 얼마 전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집 《사회학의 쓸모》를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힘을 보태려하는 노학자의 삶이 아름다웠다.《도덕적 불감증》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랑하는 학자'인 레오니다스 돈스키스와 나눈 대담을 엮어낸 책이다. 서문에서 돈스키스는 이 책이 '파편화,원자화, 그리고 그에 따른 감수성의 상실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귀속감의 재발견 가능성에 대한 대화'(27쪽)라고 밝힌다. 바우만은 우리의 삶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소비자의 활동이 시민의 기본 의무로 되어버리는 문제를 지적한다.

 

   책에서는 1장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2장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3장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4장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5장 '서구몰락을 다시 생각하며' 으로 이들의 대화를 묶어냈다. 돈스키스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과 '사생활을 식민지화하려는 욕망'을 새로운 악의 두 가지 형태라고 지적한다. (19쪽)무척 공감가는 대목이다. 뚜렷한 하나의 거대한 악이 존재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을 방패삼아 타인에게 갖은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훔쳐내고 공유한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통제한다. 소비자로 전락한 유권자는 정치를 바꿔내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정치에 무관심해진다. 오늘날 '유동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본 두 학자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 우리의 삶의 어둡고 우울한 면이 그대로 드러나니 답답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두 학자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돈스키스는 미셀 우엘벡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관계의 역사는 언제나 주기적이다.'라고 말한다. 생겨나고 발전하고 시들어 죽는다는 거다. 하지만 돈스키스는 '인간관계의 생명주기와 그것의 종말을 극복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의 본질 자체'라고 강조한다.(352쪽) 결국,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에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생각했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 무의식중에 소비 생활에 물들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깨어 있는 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

 

   짧게 주고받는 대화 형식의 글을 기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서면 대화를 주고 받은 듯, 한 사람의 이야기가 꽤나 길다. 대중과의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바우만인지라 이번 책도 쉽게 읽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학자들 간의 대화라서일까. 번역탓일까.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 형식의 글인데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다. 각자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자네는~" 하는 어색한 호칭이 몇 번 등장할 뿐이다. 역자의 후기를 통해 길잡이를 얻어볼까 했으나 웬일인지 역자후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다만, 유동적 근대사회의 문제점을 도덕적 감수성 상실로 봤다는 점에 크게 공감이 갔고, 두 학자가 대화 중에 인용한 다양한 문학 작품과 학자들의 연구물에 대한 소개는 유용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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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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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 많은 사회학 - 한국 사회를 지배한 모멸감을 꺼내 보이다.

 

   김찬호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사회학자이다. 30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 [문화의 발견], 돈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돈의 인문학]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모멸감]은 ‘굴욕과 감정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책은 우리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감정인 모멸감에 대해 다룬다. 과거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기에 공감하며 책장을 부지런히 넘기게 된다. 저자의 눈을 통해 사회를 넓게 바라보면 모멸을 주는 우리가 보이고, 모멸감으로 고통 받는 우리가 보인다.

 

   최근 보복 살인, 보복 운전,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살인, 고객의 갑질 행태 등 흉흉한 사건이 자주 보도된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크게 분노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동기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에 모멸감이 존재한다고 본다. 모멸감은 타인에게서 모욕이나 경멸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모멸은 인간이 목숨 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시킨다. 자존감을 훼손당한 사람은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저자는 한국이 모멸감을 쉽게 주는 사회라고 말한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심보가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모멸을 주고받는 사회 안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오늘은 내가 갑이지만 내일은 을이 되어 누군가에게서 모멸을 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세 가지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일자리 창출, 불평등한 분배의 개선, 부동산 가격 안정 등 구조적 차원의 접근이다. 둘째는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문화를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도록 바꾸는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이다. 마지막은 모멸감을 당하지 않도록 개인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 즉 내면적인 힘을 키우는 일이다.

 

   [모멸감]을 읽으면서 문득 이것이 사회학의 쓸모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사회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해준다. 개인의 삶과 사회․문화 구조가 맞닿은 지점을 조망하게 해준다. 사회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이 또렷이 드러난다. 나와 너를 가르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나 보다 못하다 싶으면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내가 받은 모멸감을 더 약한 사람에게 분노로 퍼붓는 사람들. [모멸감]을 통해 우리는 한국인을 지배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모멸의 매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인용된 연구물, 영화, 문학 작품, 다양한 통계 자료는 나 또한 모멸 매커니즘의 일부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깨닫게 해준다. ‘모멸감을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세 가지 차원의 대안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쳐 아쉽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한 감정의 실체를 분석하고, 모멸의 매커니즘을 지적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책에 담긴 사유는 넓고 깊지만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다. 인용한 문구나 사례들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들이라 낯설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문체도 쉽게 읽힌다. 사회학의 쓸모가 궁금하다면, 모멸감이란 낱말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면, 한국인을 지배한 분노와 불안의 원인을 알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읽어보자. 당연시 했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나는 그 동안 누군가에게 모멸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사회학의 쓸모를 깨닫게 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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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를 읽는다 / 박찬국/ 아카넷/ 2015-12

 

  책모임에서 니체의 대표작을 함께 읽었다. 다양한 번역본을 접했는데 박찬국의 번역이 가장 친절했고, 이해하기 쉬웠다. 철학 초보자들이 겁없이 도전한 니체 읽기는 쉽지 않았다. 문장 너머의 깊은 사유를 추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니체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내삶의 주인이 되라는, 내가 당연하다 믿는 것들을 의심해보라는 니체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내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문제들을 제대로 살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나만의 삶을 창조해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박찬국 교수가 <니체를 읽는다>를 새로 냈다. 목차를 살펴보니 니체의 핵심 사상을 정리하고, 니체와 대적했던 사람들과 니체를 해석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실었다. 니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나 나처럼 니체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책 같다. 아카넷에서 나온 박찬국  번역의 <비극의 탄생>을 즐겁게 읽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아카넷, 박찬국, 니체. 믿고 읽어도 되지 싶다.

 

2. 제국의 역습 진격의 일본/ 조용택/북클라우드/2015-12

 

  한국과 일본의 문제는 감정적인 접근으로 해결될 수 없다. 두 나라의 관계를 면밀히 살피고,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들이 어디를 보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책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한일 관계를 두루 살피고,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한국이 일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쓰였다. 과거를 아파하고 분노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리하게 일본과 상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식인 것 같다. 추천사 중에 '한국의 역사에서 고려시대는 평균 1.09년에 한 번, 조선시대는 1.44년에 한번 꼴로 침략을 당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3.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 / 아이러 쇼어/ 살림터/ 2015-12

 

   '배움이란 혼자 떠드는 교사로부터 수동적인 학생에게로 기술이나 정보가 옮겨 가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말하는 교과서를 넘어, 그저 시험지를 돌리고 수업 계획서대로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지식 기능공을 넘어, 크나큰 희망을 품고 성장해가야 한다. 가르침은 교사와 학생 모두로 하여금 우리를 옥죄는 사회적 제약을 통찰하게 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눈뜨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책 소개글을 읽고서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나.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교사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멸종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되는 건 당연하다. 교사는 성장, 성찰의 길에 학생과 손잡고 나아가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가. 이 책을 통해 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4. 전문가들의 사회/ 이반일리치 외/ 사월의 책/2015-12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의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다.' 지인들과 집 안에 의사 한 명, 변호사 한 명쯤 있어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한다. 일반인들은 의학이나 법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만 아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누린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와 실을 낱낱이 들춰낸다. 이반일리치 전집 중 한 권이라 반갑다. 읽고 싶다.

 

 

 

5. 왜 분노해야 하는가/ 장하성/ 헤이북스/ 2015-12

 

   '한국의 불평등은 재산 불평등보다 소득 불평등 탓이 크고, 그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 중소기업 사이의 불균형이다.'라는 문구에 눈이 간다. 얼마 전에 한 방송에서 장하성 교수를 인터뷰 했던 기억이 난다. 세세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의 말이 꽤나 명쾌하게 와 닿았었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목차를 살펴보니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원인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대안을 '정의로운 분배'로 제시하고, 그 희망을 청년 세대에게서 찾는다. 답답하기만한 현실에 속만 끓일게 아니라 문제를 알아보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 우리 사회는 뭐가 문제인가, 우리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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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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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문턱에 선 당신과 나의 이야기

 

 

‘나는 그런 어른들이 더 무서웠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어른,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는 어른들보다도, 내가 지금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는 어른들이 백배는 더 무서웠다. ’(12-13쪽) ​

 

   곧 마흔이 되는 저자의 독백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진다. 30대 중반의 내가 한 번쯤 가졌을 법한, 그러나 일상을 살아내느라 잊어버린 생각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당신들과 다르게 살 거야.'했던 호기로움은 '삶이란 다 그런 거구나.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군.'하는 수긍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나처럼 살아라 하기에는 떳떳하지 못한, 어중간한 나의 모습. 『나를, 의심한다』를 읽으며 그런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 30대 중반을 넘어 40대로 향하는 사람이 갖는 고민과 삶에 대한 사유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것이기도 했다.

 

   강세형은 라디오 작가로 일하다 2010년『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출간한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 오고 있다. 2013년에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를 출간했고, 이번『나를, 의심한다』가 세 번째 책이다. 자신의 일상,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는 에세이집인데, 짧은 에세이 24편이 담겼다. 굳이 책의 주제를 뽑아보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평화로움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담는 서정적인 글을 기대하면 안 된다. 문체는 다소 건조하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회색 구름이 꽉 낀 날처럼 어둡고 우울하다. 20대에 꿨던 꿈을 기억하고 있고, 그때의 감수성을 여전히 간직한 채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30대의 마음 풍경이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작가는 J의 ‘저절로 그려지는 그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지난밤 무슨 꿈을 꿨을까,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지난밤 어떤 아이였을까.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어떤 아이로 태어났던 걸까,’(152쪽)하고 묻는다. 당신도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업, 취업, 결혼,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해서 잊어버렸던 나의 꿈이, 열정이 그리워진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지켜봐온 영화감독의 최근 작품이 ‘너무 어른의 영화 같아서’ 슬펐다 한다. 감독의 젊은 날에는 볼 수 없었던 배려와 머뭇거림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줄 위에 올라야 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무리 우리의 마음은 아직 어린 날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해도, 우리의 시간은 이미 어른의 영화 속으로 넘어와 있었으니까’(135쪽)라는 저자의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어른 되는 일의 쓸쓸함이 크게 와 닿는다. ‘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나를 얻으면, 그 하나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둘을 생각하고, 그 둘을 위해서 쉼 없이 달리고, 그다음엔 또 셋, 넷, 다섯, ….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193쪽)라는 물음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로 날아든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제대로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고 아프게 묻는다.

 

   40대 진입을 코앞에 둔 30대의 작가 강세형. 그녀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가 보다. 혹시나 주어지는 그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생각이 당연히 옳다고 믿어버리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독자는 남의 이야기인 듯 흘려듣다가도 문득 ‘그렇다면 나는?’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와 같은 30대 후반 40 초반 연령의 독자라면 특히나 크게 공감할 것이다. 강세형은 젊은 날의 열정에서 빚어지는 열정과 호기심, 사랑을 잃어버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들려 준다. 그리고는 그냥저냥 살다가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건 별로라는 말을 툭 던진다. 꿈 많고 열정이 넘치던 젊은 날의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증언한다. 친한 친구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라고 공감하면서 잔잔한 위로를 얻는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없는 핑계, 내가 저것을 할 수 없는 핑계. 모든 핑계를 거두고 나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나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나, 진짜 나의 욕망을.’(291쪽) 라는 말은 ‘나도 진짜 욕망을 찾아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한다.


   힘겨운 30대를 넘어 40대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차분히 살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좀 다르게 살아보는게 어때?'하고 어깨를 툭툭 쳐주는 특별한 친구 강세형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게 익숙해지는, 당연해지는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당돌하게 외치는 이 30대 (이제 곧 40대)의 돈키호테가 밉지 않다. 누구나 평온한 일상을 벗어나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고픈 돈키호테를 품고 살고 있을테니 말이다. 40대, 50대, 60대가 된 강세형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녀는 또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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